애국가까지 바꾼 북…남한 지우기 어디까지?

적대적 두 국가 헌법 명기 예고…4대 세습 위한 대비 해석도

입력 : 2024-04-03 오후 2:42:06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남한을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한 이후 '남한 지우기'를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선대의 업적을 기리며 세운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한 것을 시작으로 애국가(북한 국가)와 혁명가요, 날씨 보도 등 세부적 부분에서 '통일·화해·동족' 개념 삭제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추후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라고 명기할 예정인 가운데, 분단선도 '국경선'으로 변경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중앙TV가 지난 1월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16일 방송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문·방송서 노골적 '남한' 삭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면서 남한과의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10년도 아니고 반세기를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북한)가 내놓은 조국통일사상과 노선, 방침들은 언제나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것으로, 하여 온 민족의 절대적인 지지 찬동과 세계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북남관계는 접촉과 중단, 대화와 대결의 악순환을 거듭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공화국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남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전환 노선을 제시한 것인데, 헌법 개정을 통해 적대국 관계를 반영하고, 분단선이 아닌 '국경선'으로 두 국가론을 명확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선대의 연방제 통일 방안과 통일전선 전략을 폐기하겠다는 겁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김 위원장의 지시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습니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는 △조국 통일 3대 원칙 △고려 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위성사진 판독 결과 기념탑 부근에 설치된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명제비까지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국통일명제비에는 통일과 관련한 김 주석의 생전 발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북한은 또 애국가와 혁명가요 전반에서 '삼천리 조국'이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일본의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축구 3차 예선에서 북한 선수들은 '삼천리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라는 애국가 가사를 '이 세상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라는 바뀐 가사로 불렀습니다.
 
‘통일거리’와 ‘통일역’에서도 통일을 지우고 새로운 명칭으로 수정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북한의 ‘남한 지우기’가 단적으로 드러난 예는 날씨 보도입니다. 기존에는 한반도 지도 전체에 색을 입혀 날씨를 보도했는데, '통일 폐기' 방침 이후에는 한반도 북쪽만 따로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직접 보고 듣는 신문·방송 등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겁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외무상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대남 사업 기구 정리에 나섰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회담 담당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교류·협력 전담 부서인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 관광사업 담당 금강산국제관광국 등이 폐지됐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지난 15일 조선인민군 항공육전병부대의 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16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되돌릴 수 없는 조치로 가는 과정"
 
북한은 '통일 지우기' 움직임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북한의 '통일 지우기'는 과거에 한 번도 없던 사례"라며 "되돌릴 수 없는 조치로 가기 위한 행동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민족 공동 발전과 평화 통일이라는 남북 관계의 기본 틀인 '남북기본합의서'까지 폐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 총장은 "이미 북한은 통일부터 화해·협력 등의 용어를 빼고 있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는 의미가 사라진 것"이라며 "적대적 두 국가와 영토 평정 등을 북한 헌법에 명시하는 절차만 남아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김 위원장이 선대 유훈대로의 통일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북한이 남한과 단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령 체제의 특성상 선대의 유훈에 절대적으로 구속받는 건 아니다"라며 "국제 정세를 고려해 사상의 새로운 이론적 조정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남한 지우기'는 세습을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같은 민족인데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 살고에 대한 것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잠재적인 불만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남한이 동족이라는 개념을 지우는 것"이라며 "후계자에게, 4대 지도체제에서의 안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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