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메리츠 유착 의혹…근절되지 않는 전관예우

규제 많은 보험사, 당국 출신 영입 공들여
"오랜 유착이 내부통제 부실로 이어져"

입력 : 2024-04-2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금융감독원 현직 간부가 금감원 출신인 메리츠금융 계열사 임원에게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그간 수차례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금감원 출신 금융사 임직원들과 만남을 자제하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요. 금융당국과 금융사 유착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피아' 영입 우려가 현실로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간부와 메리츠금융 계열사 임원 간 내부 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지면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메리츠금융은 최근 수년간 금감원에서 보험이나 자산운용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금피아' 인사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는데요. 금감원 출신들을 단순 사외이사가 아닌 경영실 등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임원에 배치했습니다.
 
금감원 출신이 보험업계 감사나 실무 임원으로 이직하는 사례는 업계 전반에서 목격되는데요. 특히 보험산업은 금융당국의 개입이 잦은 만큼 당국 출신 인사들이 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반면 보험업계와 당국간 오랜 유착 관계가 강화되면서 내부통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 의혹은 지난 2022년 금감원 간부가 메리츠화재 임원에게 감독·검사 관련 정보를 유출했다는 내용입니다. 메리츠화재 임원은 2020년까지 금감원에서 근무한 당국 출신 인사인데요. 민간 금융사 이직 후에도 사적 관계를 기반으로 금융당국의 제재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는 의혹을 인지한 금감원은 지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메리츠화재 임원을 입건해 물품 압수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감원 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직무상의 외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금융위원회법) 제68조(벌칙)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다만 이러한 처벌 대상은 금융위원회의 규제 대상인 금융당국 직원에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금융위원회법상 정보를 제공 받은 민간 금융사 직원에 대한 별도의 제재 조항은 없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의 감찰 과정만으로는 혐의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며 "이제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아직 혐의 유무를 확정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금감원이 금감원 간부와 메리츠금융 임원 간 내부 정보를 주고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뉴시스)
 
끊이지 않는 당국·금융사 유착
 
금감원과 민간 금융사 간 유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금감원 직원이 사적 친분이 있는 금융사 관련 인물에게 검사 등 정보를 알려주거나 민간 금융사로 이직하면서 당국으로부터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겁니다.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때는 금감원 출신 직원이 라인자산운용 관련 금감원 감사 자료 등을 유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해당 직원은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고 금감원의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낳은 라임 사건에서 금감원이 직원이 고교 동창이었던 김 회장의 편에 선 사실이 알려지며 금감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하락이 컸습니다. 당시 라임 판매사 대표들에게 중징계를 내린 금감원이 정작 자정 능력이 없다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태도 금감원 출신들의 부실 감사가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금감원 퇴직자들이 저축은행 고위직으로 재취업하면서 제대로 된 검사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한 사건인데요. 금감원이 준법 감시의 기능을 상실하고 부실 대출 등으로 저축은행이 곪아가는 것을 묵인한 결과 영업정지 등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됐습니다.
 
당시 저축은행사건을 계기로 금감원 직원은 퇴직일로 부터 3년간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는 '전관예우금지법'이 확대 시행됐습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인 금감원 직원은 퇴직일로부터 3년간 금융회사에 재취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교묘히 피해 이직하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퇴직 전 5년간 담당한 업무와 금융사에서 맡는 업무가 관련성이 없을 경우는 예외적으로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열린 국회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는 그해 금감원 퇴직자 22명이 금융기관에 재취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금감원 퇴직 직전 맡았던 업무와 다른 계열의 금융사로 먼저 간 것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금감원 인사들이 민간 금융사로 옮길 경우 전문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로비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관예우로 인한 병폐가 계속되자 이복현 원장은 취임 후 줄곧 '이권 카르텔'을 주의하라고 경고해왔는데요.
 
이 원장은 지난해 "금감원 퇴직자가 취업한 피감 금융사에 대한 대한 감독과 검사는 더욱 엄중하게 검사하도록 지시했다"라며 "금감원 출신 금융사 임직원들과의 사적 접촉이나 금융회사 취업에 있어 국민의 시각에서 한 치의 오해가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강화가 절실한 상황인데요. 당국은 금융사들에게 대표와 각 임원별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예고했는데요. 오는 7월3일부터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당국 출신들이 금융사로 이직하는 것 또한 내부통제 강화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금감원의 수사 의뢰에 따라 메리츠화재 임원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메리츠화재. (사진=메리츠화재)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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