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25번 영수회담…'DJ-이회창' 의약분업만 성공적

박근혜정부 제외하곤 모두 성사…노무현 '대연정' 제안, 일언지하 거절

입력 : 2024-04-24 오후 5:19:47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영수회담은 꽉 막힌 정국을 푸는 '돌파구' 역할을 했습니다. 1965년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정권에서 영수회담을 했는데요.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만남은 정국 현안의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했지만, 성과가 좋았던 전례는 많지 않았습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의약분업'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로 여겨지는 만큼,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권의 갈등이 쉽게 풀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습니다. 
 
 
김대중 '8차례' 영수회담…시초는 1965년 '박정희·박순천'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양자회담을 의미하는 '영수회담'은 지금까지 총 25차례 이뤄졌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8차로 가장 많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5차례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3회, 노태우·김영삼(YS)·노무현 전 대통령 2회, 전두환·문재인 전 대통령 1회 등의 순입니다. 유일하게 양자 회담을 한 번도 진행하지 않은 정부 수반은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대신 그는 여야 대표 등을 함께 만나는 3자 회담 혹은 5자 회담을 열었습니다. 
 
헌정사상 첫 번째 영수회담은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순천 당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사람은 임시국회를 소집해 한일 협정 비준안과 베트남전쟁 파병 동의안을 다루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유진산, 김영삼 신민당 총재 등과 총 5차례의 영수회담을 가졌습니다.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씨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의 회담은 국내 정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습니다. 1987년 6월24일 열린 회담에서 김 총재는 4·13 호헌조치 철폐와 김대중 민주화추진협의회장의 사면복권, 6·10 민주항쟁 관련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전씨는 "모든 정국 책임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에게 넘겼다"고 거절했고, 김 총재는 즉각 '회담 결렬' 발표와 함께 강경 투쟁을 선언했죠. 결국 5일 뒤 노태우 당시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등 9차 개헌 내용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김대중, 이회창만 7번 만나…DJ 빼곤 대다수 '실패'
 
역대 정부 중 영수회담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7번의 회담을 가졌던 것을 포함해 총 8번의 영수회담을 진행했는데요. 그중에서도 2000년 6월 의약분업 문제로 촉발된 '의료대란' 국면에서 이뤄진 영수회담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의약분업 추진으로 의사들의 반발을 샀던 김대중정부가 요청한 긴급 여야 영수회담에 이 전 총재가 "민생 문제에 대해서는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것이 상생정치"라며 응하면서 이뤄진 회담인데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예정대로 의약분업을 실시하되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약사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하는 '담판'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했습니다. 이 외에도 김 전 대통령과 이 전 총재는 남북 정상회담, 미국 9·11 테러에 따른 민생 안정 조치 등에서도 초당적 협력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지난 2000년 오찬을 겸한 여야총재회담을 갖고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여야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양자회담은 '당정 분리' 원칙을 도입한 노무현정부 이후 급격히 줄었습니다. 회담의 실익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실제로 2000년 9월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은 '실패한 영수회담'의 대표 사례로 거론됩니다.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으나 그 자리에서 거절당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 개편을 동의해 주면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 임명권을 한나라당에 넘기겠다고 협치의 손을 내밀었으나 박 전 대표가 "앞으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외면한 것입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세 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을 두고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와 마주 앉았지만, 손 전 대표가 대통령의 사과와 소고기 수입 재협상 등을 촉구하며 평행선을 걸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영수회담인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만남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이뤄졌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등의 협조를 구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대북 정책 등에 대한 이견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헤어졌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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