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정치권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채상병 특검) 추진 움직임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체되고 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특검 도입이 가시화되자 공수처의 수사도 급진전하는 겁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등 채상병 의혹의 핵심 피의자들에게 소환을 통보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인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속도가 붙은 상황입니다.
공수처는 전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재소환해 12시간 넘게 조사했습니다. 지난 26일엔 유 관리관을 처음 불러 14시간 가까이 조사했는데, 조사 내용이 워낙 방대해 주말 이후 곧바로 다시 불렀습니다.
유 관리관은 조사 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수처 "현 시점 유재은 영장 청구 검토 안 해"
일각에선 공수처가 조사 내용을 토대로 유 관리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공수처는 "현재 시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사건 관계자가 많고 다 연결돼 있어 전체적으로 조사가 이뤄지는 것과 본인 진술 내용을 봐가며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 관리관의 추가 소환 계획에 대해서는 "본인 진술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사건 관계자 조사를 진행한 이후 만약 필요하다면 추가 조사할 수 있지만 현재 정해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유 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사건 이첩 보류 지시부터 국방부의 기록 회수와 사건 재검토까지 의혹 전반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핵심 피의자입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7~8월 채상병 순직 사건을 초동 조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혐의자와 혐의 내용, 죄명을 (조사보고서에서) 빼라'는 취지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습니다.
같은 해 8월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채상병 사건 수사 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이 압수영장 없이 위법하게 회수하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재검토해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줄이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습니다.
최근에는 유 관리관이 대통령실 등 윗선의 지시를 받고 경찰과 수사 자료 회수를 협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공수처는 유 관리관이 회수 당일 이시원 비서관과 통화한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계환·박경훈 이르면 이번 주 소환조사
김 사령관과 박 전 직무대리는 이르면 이번 주 공수처에 출석해 조사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사령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박 전 직무대리는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로부터 회수해온 수사 기록을 재검토해 혐의자를 줄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차례대로 불러 조사해 대통령실의 관여 여부를 확인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공수처의 수사가 더 '윗선'으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특검 도입된다면 남은 시간은 두 달
다만 채상병 특검의 도입이 변수입니다. 민주당은 5월 2일 열리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만약 특검이 도입된다고 가정한다면, 공수처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두 달 정도입니다. 이후 공수처는 진행하던 수사를 중단하고 그간의 수사기록을 모두 넘겨야 합니다.
그전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공수처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채상병 의혹 수사는 그간 꼬리표처럼 공수처를 따라다녔던 '수사력 부족' 논란을 탈피할 기회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왼쪽)이 29일 오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위해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