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포함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역할론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공공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해 보상한 뒤 구상권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의도인 만큼 HUG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란 시각인데요. 당장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해야 하는 HUG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HUG가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하더라도 채권 회수가 어려워 기관에서 손실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도시기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HUG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전세사기 피해 구제, 주택도시기금 재원 사용 '논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경매 등을 통해 추후 회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예고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선구제를 위한 자금의 원천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선구제를 위해서는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여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재원이 바로 주택도시기금입니다. 주택도시기금은 청약저축 납입금과 건축 인허가,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때 매입하는 국민주택채권 판매액 등으로 조성됩니다.특히 임대주택 공급과 디딤돌·버팀목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 주택 구입자금·전세자금 지원에 쓰이는 재원인 만큼 전세사기 선구제에 쓰이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지적입니다.
주택도시기금 정책을 총괄하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최근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박 장관은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 기자들과 만나 "기금은 무주택 서민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은 청약저축이 기본이 되는 언젠가 돌려드려야 할 부채성 자금"이라며 "잠시 맡긴 돈으로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면 적어도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다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주택도시기금을 위탁·운용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입장도 난처합니다. HUG의 보증 채권 회수율을 보면 회수 기간을 4~5년 잡아도 100% 회수가 어렵고 회수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HUG 관계자 등에 따르면 HUG의 올해 당기순손실 규모는 7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 큰 문제는 주택도시기금 규모가 해가 갈 수록 줄고 있다는 것이죠. 국토부 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주택도시기금 조성액은 95조4377억원이었습니다. 부동산 호황기로 불리는 2021년 말 기준 해당 금액이 116조9141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년 만에 무려 21조원이 줄어든 것입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청약 저축납입액 감소, 국민주택채권 발행액 등이 모두 줄어들면서 생긴 결과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선구제할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여유자금은 2021년 말 49조원에 달했지만 2022년 28조7000억원, 2023년 18조원, 올해 3월 말에는 13조90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반면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반환채권 구입 비용이 적어도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택선 HUG 준법지원처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HUG의 역할 토론회에서 "시중 대비 현저하게 낮은 금리로 인해 수요자 대출이 늘어나면서 총지출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경선 HUG 주택도시금융연구원 차장도 "지원 사업을 위해서에는 상당한 인력과 구조가 필요하다"며 "운영비용과 부대비용 등을 감안하면 1000억~3000억원까지 HUG가 부담해야 한다. 최근 HUG가 대위변제 등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주택도시기금 운용 선진화 방안 필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해 가장 밀접한 기관인 HUG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구체적으로 주택도시기금과 관련해 독립적인 기금운용본부를 만들고 국토부는 물론 HUG와 외부 금융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기금 운용 선진화 방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현재 주택도시기금 운영회 운용규정에 따르면 기금운용심의회가 기금운영계획의 수립과 변경 등 전반적인 사안 들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심의회에는 국토부 주택업무 담당 고위공무원이 맡는 위원장 1명, 국토부 주택기금과장, HUG 기금사업본부장이 맡는 당연직 1명, 국가재정법 등에 따라 국토부 장관이 위촉하는 위촉직 위원 7명 등 총 10명으로 구성됩니다. HUG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HUG가 주택도시기금 위탁·운용기관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단순 위탁 업무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기금운용심의회에 HUG 본부장 급 한명이 당연직으로 포함됐지만 권한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의 경우도 독립적인 기금운용본부를 두고 있고, 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자산 운용업무를 위탁받는 한국투자공사(KIC)도 독립적으로 자산 관리와 운용을 하고 있다"며 "타 기관의 연금·기금 운용 형평성을 위해서도 주택도시기금 운용과 관련한 HUG의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현재 주택도시기금을 국토부가 정책 총괄 등을 하고 있는데 외압이나 정치 공세 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HUG에 전적인 권한을 주는 게 아닌 관련 기관장급들은 물론 외부 금융 전문가 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이고 선진적인 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주택도시기금 운용에서 HUG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면서도 책임 경영을 보장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HUG가 주택 및 임대차 시장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정부나 국토부의 의지에 의해서 이끌리면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향은 있다"며 "HUG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이와 함께 외부 경영평가를 강화하는 등 책임 경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주택도시기금의 경우 운용 관련 전문가 위원회를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운영을 하되, 외부 전문가들이 평가를 하는 시스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주택가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