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17'과 '8'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숫자입니다. 각각 21·22대 국회에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무력화에 필요한 여당 이탈표 개수인데요. 일명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의 재표결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이뤄질 전망입니다. 21대 국회에서 17표의 이탈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지만, 변수는 존재합니다. 바로 22대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 '55명'입니다.
정진석 비서실장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채상병 특검법' 재의요구권 의결 등 현안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7명 '김웅' 나올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21일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에 따라 채상병 특검법은 국회로 되돌아와 재의결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을 28일 본회의에서 재의결하고, 부결되더라도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채상병 특검법'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선,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합니다. 재표결에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이전까지 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 후 가결해 법률이 됐지만, 나머지 8개 법안은 재의결에서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해 폐기됐습니다.
특히 '채상병 특검법'은 윤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21대 국회 재적의원 295명 전원(윤관석 민주당 의원 구속수감 제외)이 출석한다면, 부결을 위해선 197명의 찬성이 필요한데요. 국민의힘 의원은 총 113명으로, 전원 반대표를 던진다면 재의결이 불가능합니다. 지난 2일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이 본회의에서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단 퇴장했는데요. 김웅 의원만이 유일하게 남아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현재 범야권 의석은 180석으로 분류되는데, 범여권에서 17표의 이탈표가 발생하면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 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앞서 찬성표를 던진 김웅 의원과, 지난 표결 때는 퇴장했지만 재의결에선 찬성하겠다고 공언한 안철수·유의동 의원, 민주당 출신인 이상민 의원 등의 이탈표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국힘 일각서 '찬성' 기류
관건은 국민의힘 의원(113명) 중 불출마 혹은 낙천·낙선으로 곧 국회를 떠나는 55명입니다. 공천 과정에 불만을 가졌거나, 총선 참패 원인을 두고 '대통령 책임론'에 무게를 두는 의원들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특히 4·10 총선이 '정권심판론'으로 귀결됐고 '수직적 당정구조'에 관해 당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상태라, 이들 중 상당수는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여지가 있습니다.
유의동 의원은 이날 SBS 유튜브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에 출연해 "채상병 특검법을 받지 못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법리적으로도 그렇고 수용했을 때 여권 입장에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고 말했습니다. 유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경기 평택 병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재의결이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는 점도 이탈표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입니다.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당내 공개발언이 이어지면서 '크로스 보팅'(당론과 상관없이 소신 투표하는 행위)이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출석 의원이 줄면 재의결에 필요한 의석수도 줄어드는 만큼, 총선 불출마·낙천·낙선 의원의 본회의 참석 여부도 중요합니다. 만약 국민의힘 의원 26명만 불출석한다면 재의결 정족수가 180명으로 낮아져 야권 표만으로도 재의결이 가능합니다.
이에 국민의힘에선 추경호 원내대표와 전임 원내대표인 윤재옥 의원까지 나서 낙선·낙천 의원을 일일이 만나며 표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회의 표결에 대비해 의원의 해외 출장 자제령도 내렸는데요. 그는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 전체가 당론을 지켜야 한다는 데 입장 변화가 없다"며 "공개적으로 (재표결 찬성 입장을)이야기한 분과 대화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급한 불 끄더라도…22대 국회 땐 '8명'
'채상병 특검법'이 '당론'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 될 예정인데요. 22대 국회에서 여당 의석수는 21대(113석)보다 적은 108석이고, 범야권은 192석에 이릅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8표만 이탈하면 특검법이 통과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특히 22대 국회 당선인 중엔 김재섭·한지아 국민의힘 당선인 등이 특검법에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재섭 당선인은 "여당이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특검법 처리에 대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8명의 의사결정에 따라 거부권 무력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당내 비주류·쇄신파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국민의힘 입장에선 당장 급한 불을 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셈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