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입법부 무력화'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이른바 '시행령 통치'도 일삼았는데요. 때문에 행정부의 과도한 입법권 침해로 삼권분립을 형해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권력분산을 위한 개헌의 당위성만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원포인트 개헌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힘 받는 '거부권 제한' 개헌안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감사원·검찰을 넘어서 헌법이 부여한 거부권마저 사유화했다"고 지적하며 "모든 방안을 강구해 국민과 함께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헌법에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명시돼 있지만, 이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라며 "학계에선 거부권의 '내재적 한계'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확립된 개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소극적 범위 안에서 이행돼야 함에도 적극적 입법 참여를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져 사실상 대통령이 입법권과 행정권 모두를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야권에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민주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의원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고 대통령도 국회의장처럼 당적을 가질 수 없게하는 내용을 담은 '원 포인트 개헌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삼권분립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를 재설정하자는 건데요. 윤 의원은 "국회에서 의결해 통과된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은 어디까지나 헌법 수호를 위한 헌법적 장치로써 행사돼야 한다"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 남용되고 있는 무소불위 대통령 권한은 이제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헌법 제53조에는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의가 있을 때'라고만 정하고 있을 뿐 명확한 '이의'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가 '헌법 수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과 관련한 의혹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거부권 제한' 개헌의 당위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국혁신당 주최로 열린 '채해병 특검법 등 거부권 행사 위헌성을 논한다'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본인과 가족 등의 법적 불이익을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부권은 공직 원리에 반하며, 위헌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더구나 검찰, 경찰과 공수처까지 장악하게 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중대한 사법 방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탄핵 청구가 인용될 만큼 위법성의 정도도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법무부, 국가배상법 및 시행령 개정 추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입법권 무력화 '시행령 정치'
윤 대통령의 입법화 무력화 논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10번의 거부권 외에도 이른바 시행령 통치를 통해 사실상 입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야당의 반대를 명분 삼아 모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이어왔습니다.
출범 초인 2022년 5월 윤석열정부는 공직자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개정했습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는 개별 부처의 직제개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모법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했는데, 의견수렴 과정을 대폭 축소 시키고 단 7일 만에 시행령을 통해 처리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시행령을 통해 경찰국 설치를 밀어붙였습니다. 정부가 경찰에 대한 직접 통제를 강화한다는 우려와 함께 모법인 정부조직법 취지에 부딪힌다는 지적이 나왔음에도 강행했습니다.
또 8월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시행을 앞두고 법무부는 모법의 취지와는 정반대인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사권 확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유효성을 인정했고, 무리한 시행령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시행령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 개념인데,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한 셈입니다.
다만 정부의 시행령 악용은 국회 차원의 확실한 견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시행령 개정의 문제는 원 포인트 개헌보다는 국회의 관리·감독 기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