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법', 끝내 거부권…민심 외면

10번째 거부권…민주화 이후 최다

입력 : 2024-05-20 오후 5:50:47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일명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끝내 국회로 되돌아올 전망입니다. 총선 참패 계기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요. 윤 대통령은 21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한 4·10 총선 민심을 정면으로 역행함에 따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새로운미래·개혁신당 등 범야권 의원들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채상병 특검법 수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1일 거부권 행사 유력…'역풍' 현실화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됐을 때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의 최종 시한은 오는 22일까지입니다. 이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의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즉각 브리핑을 열고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데도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는데요.
 
정 실장은 이어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거란 우려가 큰 만큼,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사한 건데요.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진행 중인 사법절차 믿고 지켜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이때부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국민 "65.2% '반대'"
 
'채상병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10번째 거부권 행사한 법안으로 기록될 예정입니다. 윤 대통령은 현재까지 총 9번의 거부권을 썼는데요. 지난 1월 이른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문제는 '민심'입니다. 20일 공표된 <여론조사꽃> 여론조사 결과(5월17~18일·무선 전화면접)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 탄핵 요건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탄핵 필요성'을 물었더니 '탄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6.3%, '탄핵이 필요하지 않다'가 39.9%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지난달 23일 공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4월20~21일 조사·안심번호 활용 무선 ARS 방식)에선 전체 응답자의 65.2%가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보는지' 묻는 말에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23.5%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이상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22대 국회, '채상병·김건희 특검'으로 시작
 
제1야당인 민주당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한다면 이를 '총선 민의 거부 선언'이자 '국민 명령 거부 행위'로 규정하고 당력을 집결해 총력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정의당·새로운미래·개혁신당·진보당·조국혁신당 등과 투쟁을 이어갈 계획인데요.
 
민주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야 6당 기자회견'을 열었고, 21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엔 '거부권 긴급 규탄대회'를, 25일엔 야 7당·시민사회 공동으로 '범국민대회'를 개최합니다.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로 돌아온 후 제2 표결에서 부결된다고 하더라도,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 방침입니다. 
 
비상대책위원회·원내지도부 모두를 '친윤(친윤석열)'으로 채운 국민의힘은 이탈표 단속에 나섰습니다. 지난 14일 당 원내행정국은 각 의원실을 통해 본회의 개최가 예상되는 23~28일 사이 소속 의원의 해외출장 일정을 파악하고, 각 의원에게 출장 자제를 당부한 걸로 알려집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이탈표를 단속하겠다고 공개 발언 했습니다. 그는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 전체가 당론을 지켜야 한다는 데 입장 변화가 없다"면서 "공개적으로 (재표결 찬성 입장을)이야기한 분과 대화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총 113명 가운데 17명이 찬성하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되고 '채상병 특검'이 출범하게 됩니다.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여당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김웅 의원과, 재의결에선 찬성하겠다고 공언한 안철수 의원, 민주당 출신인 이상민 의원, 조경태 의원 등의 이탈표가 예상되는데요. 이번 총선에서 낙천·낙선한 의원 55명 중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다면 21대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 정치적 타격 불가피…'불통' 이미지 강화
 
현실적으로 21대 국회에서 17표의 이탈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지만, 어느 정도의 이탈표만 나오더라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9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추가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의 불통·오만 이미지도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21대 국회가 '거부권'으로 끝나게 되면서 폐기 수순인 1만6000여건의 경제·민생 법안은 오롯이 윤 대통령의 책임이란 비판도 제기됩니다. 대통령이 역대 최다 거부권을 남발하며 민심을 외면하고, 불필요한 경색 국면을 형성했다는 겁니다.
 
22대 국회는 채상병·김건희 특검으로 시작하게 될 공산이 큰데요.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한다는 방침입니다. 기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에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을 수사 대상에 추가하는 방향입니다.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여야가 대치하는 싸움판이 될 여지가 높습니다. 윤 대통령은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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