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국정에…고개 숙인 윤 대통령

'KC 인증' 철회 논란에 "윤 대통령에 보고 안 됐다"
직구 금지부터 공매도 금지까지 연달아 혼선 발생

입력 : 2024-05-20 오후 4:27:24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국가통합인증마크(KC) 미인증 제품의 해외직구 금지 철회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자, 대통령실이 20일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집권 3년 차까지 반복되는 '정책 혼선'에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대책 발표 나흘 만에 고개를 숙인 셈입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해외 직구 KC 인증 의무화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습니다. 주 69시간제와 만 5세 조기 입학, 연구·개발(R&D) 예산 등 윤석열정부 출범 후 '정책 혼선'은 일상화돼 왔는데요.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공매도 금지'를 둘러싼 혼선까지 더해지면서 아마추어 정부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나흘만 사과했지만…'책임 회피'로 일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제 계획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6일 정부는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마크가 없는 제품의 직구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졌고 제조업체의 물품 수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상세히 설명하지 못해 국민에게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위해성을 집중 조사하고 위해성이 드러난 제품은 차단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수습했습니다.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책 발표 내용이 치밀히 성안되지 못하고 국민에게 미칠 영향, 여론 반향 등도 사전에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해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할 경우 혼란과 불신을 가중한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하고 다시는 이런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슬림 대통령실'을 내세우며 폐지했던 정책실을 부활시키며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를 주문했지만 제 역할을 못 한 셈입니다.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섰습니다. 성 실장은 "대통령실은 여론을 경청해 먼저 총리실로 하여금 정확한 내용 설명을 추가하도록 했다"며 "국민 불편이 없도록 조치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관계 부처가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KC 인증'으로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의 사전 검토와 당정 협의를 포함한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브리핑 등 정책 설명을 강화하고 정부 정책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지난 3월부터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한 태스크포스(TF)에서 정책을 검토했지만, 대통령실은 TF에 참여하지 않았고 대통령에게 보고된 바 없다"고 설명, 또다른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익은 '정책 발표'→'번복' 도돌이표
 
문제는 윤석열정부의 '정책 혼선'이 반복돼 왔다는 점입니다.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지만 학부모의 반발로 교육부총리가 사퇴하면서 번복했고, 노동부 장관이 연장 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를 바꾸는 '주 69시간제'를 제시했다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백지화됐습니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밝혔지만 총선 기간 비판이 이어지자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하겠다고 기조를 뒤집었습니다. 
 
도화선이 된 해외 직구 상품 구매 금지 논란 이후에도 '정책 혼선'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신년 첫 업무보고 당시 "공매도는 부작용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이 확실하게 구축될 때까지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같은 달 한국거래소에서 가진 민생토론회에서도 "6월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기로 돼 있지만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다시 재개할 뜻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 10일 직접 주재한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도 "기관·외국인의 불법 공매도가 반복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불법 공매도를 점검·차단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그간 직접 밝혀온 기조와는 다른 정책 방향성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나왔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인베스트 K-파이낸스' 투자설명회 후 "개인적인 욕심이나 계획은 6월 중 공매도 일부라도 재개하면 좋겠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미비하다면 시장이 예측 가능한 재개 시점을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6월 재개와 관련해 기술·제도적 미비점이 있더라도 이해관계자 의견을 들어 어떤 타임 프레임으로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시장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정부는 오는 6월 말까지 국내 증시의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는데, 당국의 전산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걸리면서 7월 공매도 재개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파급력이 커졌습니다.
 
다만 금감원은 지난 19일 설명자료를 통해 "공매도 금지·재개 관련 사항은 금융위원회 의결 사항이며 현재까지 공매도 재개 시점과 관련해 정해진 바는 없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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