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윤석열정부가 사회적 참사로 부상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눈물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일명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등 4개 쟁점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재의요구안(거부권)을 행사한 건데요. 윤 대통령은 앞서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사망사건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등에 이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가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본회의 통과 '하루' 만에…특별법 '폐기'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회 본회의 통과 하루 만에 특별법이 폐기된 겁니다. 전날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선 구제-후 회수'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공공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을 직접 보전해주고 이후 임대인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자금을 회수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나중에 경·공매 등을 거쳐 임대인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도록 했습니다. 피해주택 매입을 요청해도 우선 공급받지 못한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조항도 담겼습니다.
국회 본회의 통과 후 국토교통부는 즉각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재의요구안 제안을 예고했는데요.
정부가 특별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재정 투입에 따른 부담 때문입니다. 보증금 직접 보전의 재원인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 서민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한 청약통장으로 조성된 '부채성 자금'인데, 잠시 맡긴 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면 다른 국민이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는 겁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경매차익을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피해를 최대한 회복해 주는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야당안과 비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조원 재정에 정부 난색…1만5000명 '눈물의 절규'
투입 예산에 대해서도 엇갈리고 있는데요. 피해자 유형만 해도 보증금 전액을 손실 본 피해자, 손실 규모가 큰 피해자, 작은 피해자 등 천차만별인 데다 피해자 규모, 특별법 적용 기간 등에 따라 피해자의 채권 가치 추정과 회수율 전망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탓입니다.
정부는 지난달까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등으로 1만5000여명을 인정했는데요. 평균 보증금은 1억4000만원으로, 약 3조~4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과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서는 585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인데요. 사기 피해자 약 3만여명 가운데 구제해줄 필요가 없는 선순위 세입자를 제외한 인원에 대해서만 구제해주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다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인데요. 국회 본회의 표결 하루 전날 발표한 정부안은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과정에서 생긴 경매 차익을 피해자 주거 지원에 활용하는 게 골자입니다.
구체적으로 LH가 피해자의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피해 주택을 경매를 통해 매입한 후 그 주택을 공공임대로 피해자에게 장기 제공한다는 계획인데요. 그 과정에서 정상 매입가보다 낮은 낙찰가로 매입한 경매 차익을 활용합니다. 다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 역시 재발의를 예고하고 있어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남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안은 경매를 받아 임차인들이 살게 해주는 것은 물론 경매로 이익을 볼 경우 혜택까지 준단 것이고 국회안은 임대보증금 채권을 매각해 현금 회수할 건 회수를 한다는 것으로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며 "정부안과 국회안이 상충되는 게 아닌데 왜 꼭 하나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또 "대통령이 계속 이렇게 평행선을 그으면 그 사이 전세사기 문제 지역이 확산돼 피해자가 많아질 것"이라며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민생을 강조했고 민생회복의 해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거짓이 아니라면 피해자들의 구조 요청에 즉각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