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주거취약계층의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는 영구임대주택 공급실적이 부진한 상황입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독거노인, 탈북민, 외국인 노동자 등 주거취약계층의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입니다. 때문에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공급 확대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임대아파트 인식 전환을 위한 품질개선부터 소셜믹스(아파트 내 분양물량, 임대물량을 섞는 제도)로 인한 고립화, 노후화된 영구임대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사업까지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습니다.
"지을수록 손실"…영구임대주택공급 최근 3년간 '답보'
5일 주택관리공단의 연도별 공공임대주택관리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4만여 가구가 영구임대주택 관리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영구임대주택의 공급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몇 년 간 감소추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LH의 연도별 영구임대주택 공급실적에 따르면 2019년 2666가구, 2020년 3915가구, 2021년 4497가구 등 상승 곡선을 그리던 영구임대주택 공급은 2022년 2706가구까지 떨어진 후 지난해에는 1309가구로 1000가구 수준으로 급락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서울시 영구임대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경우 2014년 146호의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한 것이 마지막 실적입니다. 실제 서울시의 영구임대주택 관리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 12월 31일 기준 관리대상 영구임대주택은 17단지, 2만2672가구입니다. 그런데 올해 연말 기준 관리 예정 대상 가구수는 작년과 같은 17단지, 2만2672가구입니다. 올해 신규입주 예정인 영구임대주택 가구 수가 '0'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요 주택 공공기관의 영구임대주택 공급이 답보 상태에 머무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을수록 손실이 날 수 밖에 없는 공공임대주택 사업 특성에 기인합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주요 해법 중 하나지만, 막연히 공급을 늘리는 대책은 현실성이 없다"며 "정책적으로도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물량은 매우 제한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택도시기금 운용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영구임대주택 공급 전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HUG가 최근 겪고 있는 재정적 문제들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소셜믹스 영구임대단지 '고립화'도 문제
새로운 영구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문제뿐 아니라 현존하는 영구임대주택 관리에서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셜믹스로 인한 영구임대단지의 고립화가 지적됩니다. 일반적으로 소셜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 특히 저층부에 임대 단지를 배치하는 것을 일컫는데요, 영구임대아파트가 대규모 일반 민간분양 단지 내에 섞여있는 경우도 소셜믹스 사례에 해당합니다.
실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일반 아파트 단지 내에 배치된 경기도 광명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지 내 한 사회복지기관의 관계자는 "영구임대단지에 독거 노인이나 장애인들 거주 비율이 높다보니 119 구급차나 경찰들의 출동 횟수가 잦은 편이다. 때문에 인근 단지 분들이 종종 으슥하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반적인 1인 가구 거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은 '힐링'을 주제로 하는 게 많은데, 영구임대단지 거주민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선호하지 않는다. 좀 더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케어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영구임대 단지가 항상 '천덕꾸러기' 같은 이미지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해당 광명시 단지의 경우 뛰어난 사회복지 인프라를 바탕으로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은 물론 가능할 경우 노인이나 장애인 일자리 창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습니다.
경기 광명시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내 복도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단지 주변 S부동산 중개인의 경우 "영구임대단지가 포함된 경우 집값에도 영향이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광명시의 해당 단지의 경우도 영구임대단지 바로 옆에 있는 단지의 23,24평형대가 전체 단지 내에서도 매매가가 가장 비싼 편이다. 과거에는 절도가 의심된다며 영구임대 단지와 그 외 단지 간에 벽을 쌓는 등의 일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옛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말 뿐인 공공임대 품질 향상…재건축도 걸림돌 투성
이와 함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도 노후화 되면서 재건축에 대한 수요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9년 준공된 서울시의 1호 영구임대아파트인 노원구 하계동 하계5단지 시영아파트가 2년 전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요, 오세훈 서울 시장이 2022년 이 단지를 언급하면서 초고층 주상복합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처럼 짓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공공임대주택 품질을 높이는 것이 화두였던 만큼 오 시장의 이 발언도 화제가 됐지만, 이후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속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원주민들에 대한 이주 대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고, 당초 발언과 달리 국비와 시비 지원도 끊기면서 일반분양 물량은 늘렸지만 오히려 사업성이 더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1호 영구임대아파트 마저도 정비사업이 당초 약속보다 부진한 상황인데 이후 노후화된 다른 영구임대단지들이 겪을 난항은 불 보듯 뻔한다"며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로 영구임대아파트와 같은 취약계층 주거 공간이 앞으로 더 필요할 것은 분명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