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밸류업이 물리적 불가한 이유

입력 : 2024-06-11 오후 12:29:11
밸류업은 물리적으로 불가해 보입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집단 구조가 이중, 삼중 상장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모회사만 상장사이고 자회사는 100% 지분 구조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증시에 모인 한정된 자금이 여러 상장사에 분산되는 구조입니다. 테슬라는 머스크를 믿고 테슬라에 투자하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SK를 예로, 최태원 회장을 믿어도 SK,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을 두고 어디에 투자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밸류업 연장선에서 상속세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모회사(지배회사)에 대한 저평가 요소를 없애자는 게 정부가 상속세 논의에 착수한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중상장구조는 상속세와 밸류업 효과에도 발목을 잡습니다. 국내 증시자금이 한정됐다는 전제 아래 상속세가 해결돼 모회사의 밸류업이 이뤄진다면 그만큼 자회사는 소외받습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밸류업은 제자리인 셈입니다. 
 
이중상장 이슈가 뜨거울 때 기업집단에선 모회사와 자회사는 한몸이라고 주장하며 주주들을 설득했습니다. 재무제표가 결합되는 종속회사라는 얘기죠. 그런데 정작 자회사에 트러블이 생겨도 모회사의 이사회가 법적 책임을 지진 않습니다. 자회사는 별도 법인이고 별도 이사회로 운영되는 구조라는 게 법상 원칙입니다.
 
그나마 자회사에 생긴 문제로 모회사 주주가 손해를 봤다면 2020년말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인이 회사 내부정보를 알기 어려워 이사회가 업무 방기했단 증거를 확보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중대표소송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를 보면 한몸이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습니다.
 
상속세를 해결해 해외자본이 국내 더 유입된다는 전제라면 주가에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제가 성립할지 의문입니다. 해외자본 유입을 막고 있는 게 상속세일지 반문하게 됩니다. 흔히 상속세 탓으로 추정되는 저평가 요인은 모회사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를 더 내기 때문에 하방 관리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 상속세를 해결해도 기업집단이 영위하는 본질적 사업가치가 바뀌진 않습니다.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 외국인이 상속세가 해결됐다고 모회사에 투자할 리 만무합니다. 
 
물론 자회사가 반도체로 벌어들인 돈이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모회사에 쏠릴 가능성은 있습니다. 모회사에 상속세 이슈가 걷히면 그 가능성은 좀 더 부각됩니다. 그렇더라도 자회사에 투자했던 돈을 모회사에 옮길 뿐입니다. 반도체 사업가치가 커져 배당가능이익이 커진 건 아니니까요. 주주가 투자 규모를 늘릴 동기가 못됩니다.
 
상속세 문제로 인해 기업 자원이 상속세 재원 마련에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의사결정도 지배주주에 편중돼 주주 이해와 상충된다는 원인에서 따져봐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이런 지배구조 문제가 상속세를 없앤다고 해소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재벌 총수가 유죄판결을 받았던 횡령, 배임, 비자금 사건 등이 모두 상속세 재원 마련 목적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대주주가 회사카드를 개인용도로 썼던 범죄 유형이 상속세 때문이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미국에선 횡령, 분식회계 사건 이후 강력한 처벌과 규제가 이뤄졌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집행유예, 사면 등으로 사건 처리되고 규제는 정권 때마다 오락가락했습니다. 이를 보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제도적으로 입증, 보장되지 않는 게 디스카운트 원인입니다. 상속세 해결은 영구적인 세습만 보장할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세습의 결과는 굳이 설명이 불필요합니다.
 
이재영 뉴스토마토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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