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김성은 기자] 식품업계는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높은 사회적 책무를 안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식품을 다루고 있는 탓인데요. 특히 고물가에 고통을 받은 계층이 증가하는 요즘과 같은 시기, 식품업계에는 더욱 높은 소명의식이 요구됩니다. 문제는 업계가 이 같은 흐름을 뒤로 하고 고물가 기조를 이유로 가격 인상을 멈출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상당수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눈길이 따가울 수 밖에 없는데요. 때문에 시장 곳곳에서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식품업계는 고물가 기조에 각종 부담이 커지는 만큼 가격 인상 단행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올해 1분기 식품 주요 기업들을 살펴봐도 실적 잔치를 벌이지 않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식품 대장주로 일컬어지는 CJ제일제당의 경우 CJ대한통운을 제외한 올해 1분기(이하 연결 기준) 매출은 4조4442억원으로 전년 대비 0.8% 증가했습니다. 또 영업이익은 2670억원으로 77.5% 급증했는데요. 특히 식품 사업 부문의 경우 매출이 2조8315억원으로 2.6% 늘고, 영업익은 1845억원으로 37.7% 증가했습니다. 국내 사업은 내식 트렌드의 확산으로 주요 제품 판매량이 늘고, 해외의 경우 핵심 권역인 북미를 비롯해 신시장인 유럽, 호주 등지에서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 주효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제과업계 선두 업체인 롯데웰푸드의 경우 올해 1분기 매출은 95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9%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00.6% 뛴 37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익이 1년 새 2배나 오른 셈인데요. 롯데웰푸드 측은 가공 유지 가격이 안정되면서 유지 부분 수익성이 개선되고, 인도 및 카자흐스탄 사업 성과에 따른 글로벌 매출이 영업익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라면 시장에서는 삼양식품이 압도적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삼양식품은 지난 1분기 3857억원의 매출과 80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요. 이는 역대 분기 최대 수준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매출이 57%, 영업익이 235%씩 각각 급등했습니다. K-푸드 열풍 중심에 있는 '불닭볶음면'의 해외 시장 급성장세가 1분기 실적을 견인했습니다.
주요 식품사들의 실적 개선도 두드러졌습니다. 동원F&B는 1분기 영업이익이 499억원으로 1년 새 14.8% 증가했고 매출은 1조1190억원으로 3.5% 성장했습니다. 즉석밥, 국, 탕, 찌개 등 가정판매식(HMR) 및 실속형 선물 세트의 판매 호조가 성장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또 대상의 경우 지난 1분기 영업익은 전년 동기보다 91.5% 늘어난 477억원, 매출은 5.5% 오른 1조44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한유정 한화증권 연구원은 "음식료 업종 희대의 서프라이즈"라며 "생산능력(CAPA)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지만 지역, 제품, 국가에 대한 믹스 변화로 올해 실적 성장은 안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사회적 책무 인식 필요…진정한 ESG 의미도 되새길 때
최근 인플레이션 장기화 흐름 속에 식품 시장의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업계에 만연한 그리드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윤리의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설탕, 코코아 등 일부 부재료 가격이 올랐다 해도 밀 등 주재료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많은 식품 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가세를 기록했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제품 가격 인상은 그리드플레이션에 가깝다고 본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곳이 올릴 때 같이 올려야 주목도가 떨어지니 가격 인상 기조에 편승함과 동시에 소비 위축으로 구매 건수가 줄어든 부분을 단가 인상으로 상쇄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식품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격 인상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며 "정부가 물가 자극을 우려해 식품 가격 인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기업이 이런 통제에 따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사회와 보폭을 맞춰 가야 한다. 소비자들이 힘든 시기에는 이를 배려하는 가격 정책을 펼쳐 '착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식품 기업은 기업 간 거래가 아닌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거래 형태가 많은 데다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이 더욱 요구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업계 입장에서는) 생존이 급선무인 상황인지라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원가 상승분을 선반영해 제품 가격을 미리 올리거나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교묘하게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행태에 대해 조사·발표하는 워치 독(감시견)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기업들이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EGS 경영을 표방하며 소비자 및 사회와의 접점 강조에 나서고 있지만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생각해 볼 문제"라며 "식품·외식 기업들은 좋은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시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를 안고 있다.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식품 매대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김성은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