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떠나는 쪽방촌)①쪽방의 익숙함, 길들여진 외로움

정부·지자체 쪽방촌 재개발 후 공공주택 건설 계획
'탈쪽방' 유도하지만 쪽방으로 되돌아오는 사례 많아
외로움 못 견뎌 자살도…"집 제공이 대안 아니다" 지적
"자활 위한 대책 마련 필요…새 인간관계 형성 지원도"

입력 : 2024-07-0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박창욱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 지어질 공공임대주택에는 거주자 절반 정도가 입주할 걸로 예상됩니다. 나머지 거주자들은 다른 쪽방촌으로 옮겨 가거나 자기 고향으로 가려고 할 겁니다. 이도저도 안 되는 분들은 결국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뒀던, 노숙자가 되는 걸 택하기도 할 것이고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내 쪽방상담소에서 일하는 A씨는 <뉴스토마토>와 만나 "쪽방에서 오래 지내면서 적응하게 된 거주자 중에는 오히려 빌라나 아파트에서 사는 걸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제법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쪽방촌의 환경에 익숙해지고 쪽방에서 지내는 동안 외로움에 길들여지면 주거환경이 훨씬 개선된 주택에 들어가더라도 힘들어한다는 겁니다. 결국 다시 쪽방촌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정부·지자체 쪽방촌 재개발로 '탈쪽방' 유도
 
쪽방촌은 도시 경관을 해치는 데다 절도나 폭력 등 범죄가 빈번합니다.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고, 인근 주민들의 인식도 좋지 않습니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정부와 서울시, 지자체는 쪽방촌 재개발을 주요 현안으로 삼습니다. 특히 쪽방촌을 재개발하고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데 관심이 큽니다. 쪽방보다 환경이 더 나은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도록 유도, '탈쪽방(쪽방촌을 벗어나는 것)'을 돕겠다는 겁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조감도. (이미지=국토교통부)
 
실제로 영등포 쪽방촌 일대(영등포동 422-63번지)엔 공공주택 사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습니다. 영구임대주택 370호, 행복주택 91호, 분양주택 321호를 짓는 겁니다. 준공 날짜는 2026년입니다. 이 사업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영등포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합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과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도 재개발과 공공주택 건설 사업이 계획됐습니다. 이들 사업은 쪽방촌을 헐고 거기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쪽방촌 거주자들을 입주시키는 게 목적입니다.  
 
쪽방촌 거주자 "차라리 쪽방촌서 머물겠다"
 
하지만 취재팀이 만난 쪽방상담소 관계자들과 거주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탈쪽방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임대주택을 짓고 주거환경을 개선을 해주겠다는데도 '쪽방촌에 머물겠다'는 분들이 생기는 겁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에서 일하는 B씨는 "강서구·양천구에 공공임대주택이 많고, 쪽방촌 거주자들을 그곳으로 옮기려고 하는데도, 일부는 안 가시려고 한다"면서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익숙함과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계속 이곳에 살았던 거주자들은 여기에 환경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굳이 옮기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이어 "어떤 분은 주거환경이 좋은 임대주택으로 갔지만 외로움을 느끼더라"며 "그동안 직장이나 사회적 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가서 새 인간관계를 맺는 걸 두렵고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쪽방촌 거주자 중엔 새로 간 임대아파트에서 목숨을 끊거나 외로워 다시 돌아온 사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사는 C씨는 "행정복지센터에서 임대주택을 신청하라는 연락이 오는데, 여기가 더 낫다"며 "동네 사람들과 '형님, 동생' 하고 지내는 데 여기 사람들을 다 가져갈 수 없지 않느냐"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 "집이 전부 아니야…공동체 중요"
 
전문가들은 쪽방촌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단순히 새 집을 짓거나 주거환경이 좋은 데로 옮기도록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임대주택으로 갔다가 쪽방촌에 다시 오는 분들은 '집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며 "인간관계는 다 쪽방촌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쪽방촌 인간관계란 무엇일까요.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만난 D씨는 "쪽방촌은 고아, 범죄자 출신, 코아(COA,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인 가정에서 자란 자녀) 등 결손 상황인 분들이 모여서 형성된 동네"라며 "심지어 교도소에서 1·3·5호실 쓰던 분들이 형을 마친 뒤 여기로 와 서로 의지하는 모습도 봤다"고 했습니다.
 
이어 "'재개발해서 새 집을 주면 거주자들이 좋아할 거야. 잘 적응할 거야'라는 건 제3자의 생각일 뿐"이라면서 "쪽방촌에 거주하는 분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형, 동생' 할 수 있는 패밀리십, 공동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한 쪽방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탈쪽방 위한 일자리 주선·심리 상담 필요"
 
영등포 쪽방촌을 벗어난 E씨는 "보통 임대주택을 못 견뎌하는 분들 중엔 알코올 중독자나 도박 중독자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주보상금을 받아도 바로 탕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탈쪽방을 위해선 단순히 거처만 옮겨주는 게 아니라 일자리 주선,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상담·지원제도가 함께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돈의동 쪽방상담소의 D씨도 "탈쪽방 기준은 '집 제공'이 아닌 '자활'로 삼아야 한다"며 "쪽방촌 거주자에게 일자리 주선+인문문화 정책 지원까지 해야 자활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탈쪽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현·신태현·박창욱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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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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