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벼르는 당국…강호동 농협 회장 '백기'

조합장 시절 불법대출로 직무정지 3개월 징계
억울함 풀겠다더니 돌연 징계취소소송 접어

입력 : 2024-07-0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조합장 시절 금융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포기했습니다. 중앙회장까지 당선된 마당에 승산이 없는 소송에 매달리기보다는 당국 비위를 맞추는 것이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감독원은 농협중앙회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는 농협금융 계열 전반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중앙회장 당선 뒤 지난 4월 소송 취하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4월 강 회장은 조합장 재직 당시 금융당국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 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 율곡농협 조합장 재임 중 동일인에게 수십억원의 초과대출을 내준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돼 직무정지 3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출 취급 시 자금의 용도와 소요금액, 소요기간, 상환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적정금액을 지원해야 함에도 이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적발 내용은 지난 2014년 8월7일부터 2018년 12월27일 사이 특정인에게 동일인대출 한도를 최대 48억1700만원 초과해 부당대출을 실행한 것입니다. 이외에 2017년 4월13일부터 약 1년 간 부동산개발사업 용도로 수십억원의 대출을 율곡농협이 내줬는데, 해당 부동산의 사전분양률이 낮아 중도금을 통한 마감공사비 충당이 불가능해지자 또 다른 부당대출을 실행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강 회장은 당시 금융업을 모르는 비전문가임을 전제로 금융당국의 처분이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농협 조합장은 '감독자'이기는 하지만 농협에서 일어나는 불법 행위를 일일이 다 챙겨보기는 힘들다는 논리입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강 회장이 당국을 상대로 낸 직무정지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고, 같은 달 강 회장은 항소장을 다시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항소를 취하하면서 결국 강 회장의 직무정지 징계 처분 이력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최근 수년간 횡령·배임 사고가 잇따르면서 금융권 내부통제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불법 대출 관련 감독 부실의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강 회장은 올해 초 농협중앙회장 선거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농협법이나 중앙회 정관에서는 금융당국의 직무정지 처분을 중앙회장 선거 출마에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중앙회장 출마 자격이 조합장이었다면 강 회장의 피선거권이 박탈됐겠지만, 조합원이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다는 근거를 들기도 했습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융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취소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확안됐다. 강 회장이 지난 1월2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제25대 농협중앙회장선거에서 당선 확정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국과 대립각 피하려는 듯 
 
금감원이 농협중앙회를 정점에 둔 농협금융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서 강 회장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접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강 회장이 소송을 취하한 시점도 금감원이 농협 지배구조를 들여다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립니다.
 
올 들어 농협은행 금융사고, NH투자증권(005940) 최고경영자(CEO) 인선 등으로 농협금융의 취약한 내부 통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 중심에는 중앙회의 인사 개입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난 2월 농협은행에서 109억4733만 원 규모의 배임 사고가 발생했는데, 검사 결과 영업점 직원이 불법 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농협중앙회 출신의 '낙하산 직원'이 관할 지점 내부 통제를 총괄해 온 탓에 은행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비금융 사업을 맡아온 중앙회 임직원이 전문성 검증 없이 금융 부문으로 손쉽게 이동해 내부 통제가 취약해졌다는 얘기입니다.
 
농협금융의 계열사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당초 농협금융이 윤병운 현 NH투자증권 대표를 추천했는데,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농협중앙회가 반대 목소리를 내며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금융사가 아닌 농협중앙회가 손자기업(NH투자증권)의 CEO 인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3월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구분돼 있지만 위험도 명확히 구분되고 있느냐에 대해선 고민할 지점이 있다"며 "자칫 잘못 운영되면 금산분리 원칙, 지배구조법 규율 체계가 흔들릴 수 있어 챙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5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했고, 농협중앙회를 정점으로 농협금융지주-농협은행으로 이어지는 특수한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농협 지배구조가 전방위적으로 도마에 오르자 강 회장 입장에서는 당국과의 대립 구도를 유지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농협중앙회 측은 "회장 취임 전에 진행한 개인 소송으로 (소송 취하 배경에 대해) 중앙회가 밝힐 입장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월21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농협이) 금산분리 원칙이나 내부통제와 관련된 합리적인 지배구조법상 규율 체계가 흔들릴 여지가 있는지 잘 챙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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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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