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복귀 전공의에 손 내민 정부…나쁜 선례 '우려'

전공의 행정처분 중단 아닌 '철회'…9월 수련시 '특례'
복지부 "원칙 훼손에도 의료공백 최소화 최우선"

입력 : 2024-07-08 오후 4:30:35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정부가 지난 2월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중 복귀하지 않고 있는 이들마저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습니다. 전공의 이탈이 5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이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 입장인데요. 불법 집단 행동에도 '의사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학습효과를 심어준 셈이 돼 또 한번의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처벌 안받는 전공의들…'수련특례'까지 적용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정부 방침을 밝혔습니다. 조규홍 장관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것은 지난달 4일 전공의와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행정처분과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등 각종 조치에 대한 철회 발표 이후 한 달 만입니다. 
 
조 장관은 "수련 현장의 건의사항과 의료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늘부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복귀한 전공의와 사직 후 올해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수련특례'를 적용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각 연차별 복귀 시기별 상황에 맞추겠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2월 집단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정부의 '진료 유지 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법정 최고형, 면허 정지' 등을 언급하며 강경하게 전공의들을 압박했던 정부는 돌연 지난달 4일 행정명령을 철회하면서 병원에 복귀한 전공의들에 대해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했는데요.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탈 전공의들의 복귀 혹은 사직을 독려했지만, 복귀율이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자 나머지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해서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추가로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그동안 생긴 공백으로 수련을 이어가는 데 법적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련특례까지 내놨는데요. 현행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에 따르면 수련 기간 중 사직한 전공의가 1년 이내에 같은 전공, 같은 연차로 복귀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임용은 해마다 3월, 9월에 이뤄지는데요.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오는 9월 모집에 지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해왔고 이마저도 정부가 수용한 겁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집단행동에 면죄부…"재발방지 대책 필요" 
 
정부는 이번 방침이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원칙만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해명인데요. 
 
원칙을 접으면서 없는 특례까지 만들 경우 여론이 악화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복지부는 "많은 고민 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진료 공백 상태에 따른 환자들의 피해, 불편함"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이를 해소하는 것을 가장 우선에 둬야 한다고 봤다"고 전했습니다. 
 
또 행정명령을 내린 상태에서 철회를 한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는 "지난 2020년도에도 고발을 철회했던 경우가 있었다"며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와의)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과거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성공을 맛본 전례가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는 의료 공급의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어 의사인력은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대정부 의료파업 경험을 통해 오래 자리를 비우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는 믿음을 체득해 왔습니다. 의사들이 떼쓰기할 때마다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훼손한 게 '의사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행정처분을 철회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사들에 대한 특혜가 맞다"면서도 "다만 이전에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적어도 '의대 증원' 만큼은 막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의료개혁의 목표는 전공의 징계가 아닌 전문의 중심의 상급종합병원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라며 "중증 환자 위주로 상급종합병원이 운영되도록 정책 개선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결정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수련체계의 연속성 등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사진=환단연)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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