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2주치’ 뿐…정유업계 “비축유 풀어달라”

가격 통제에…업계, ‘벙어리 냉가슴’
미 비축유 푸는데 정부는 ‘소비 통제’

입력 : 2026-03-20 오후 2:25:12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의 한국 도착이 불투명해지며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고가격제 등 가격 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 원유 수급이 끊길 위기에 처한 정유업계는 눈치를 보느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비축유 방출 등 실질적인 공급 확대 지원만을 애타게 바라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석유공사 울산석유비축기지. (사진=한국석유공사)
 
20일 업계에 따르면 충남 서산 대산항에는 원유운반선 ‘베리럭키’ 및 ‘이글 벨로어’호가 입항했습니다. 두 원유운반선은 각각 지난달 26일 및 28일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왔으며, 해당 선박 외에 중동발 원유운반선의 한국 입항은 당분간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국내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가운데, 미국은 전략비축유(SPR) 추가 방출 카드와 함께 이란산 원유 제재 완화라는 고육지책까지 꺼내들었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출연해 “며칠 내 해상에 묶여 있는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며 “추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했습니다. 앞서 미 행정부는 약 1억72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으며 이달 12일 이전 선적된 일부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도 내놨습니다.
 
미국마저 공급 확대 카드를 총동원하는 배경에는 급등락하는 국제유가가 있습니다. 이날 브렌트유 선물은 장중 배럴당 119.13달러까지 치솟으며 120달러에 근접했지만, 이후 상승폭을 반납해 108.65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100달러를 웃돌았다가 하락 전환해 96.14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정유업계 역시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이 물량 부족인 만큼 비축유 방출과 러시아산 원유 도입 등 실질적인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는 입장입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워낙 분위기가 살벌해 적극적으로 얘기를 못하고 있지만 업계에서 보유한 물량은 2주치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가 간 협약으로 원유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가급등에 따른 대책 마련을 위한 정유업계 간담회'. (사진=뉴시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유가급등에 따른 대책 마련을 위한 정유업계 간담회’에서도 공급망 확보에 대한 언급이 나왔습니다. 이건명 S-OIL 부사장은 “중동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도입량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며 “기존 원유 물량을 호르무즈가 아닌 홍해로 우회하도록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영모 GS칼텍스 상무는 “일단 공급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민간 재고를 활용해 공급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신중한 입장입니다. 일단은 최고가격제와 수출 제한, 자동차 5부제 시행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며 내수 수급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비축유는 약 1억9000만배럴 수준으로 정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약 208일간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평균 순수입량 기준으로, 실제 국내 석유 소비량(하루 약 250만~280만배럴)을 기준으로 단순 환산할 경우 대응 가능 기간은 약 68~76일에 불과합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이날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축유는 비상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남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수급대책을 가동한 다음 필요할 때 활용할 계획”이라면서도 “정유사, 석유공사와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의 물량을 방출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조만간 계획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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