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채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결과 발표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고 발생 1년 만에 경찰이 내놓은 결론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혐의 없음, 불송치’입니다. 경찰이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느라 채상병 사망 사고에 연루된 임 전 사단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습니다.
경찰의 행보는 특히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경찰은 국회의 형사소송법 개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해 상당한 수사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용산의 눈치’만 본 탓에 겨우 얻어낸 검·경 수사권 조정의 명분을 허물고, 검찰의 손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가 6월 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해병대 채상병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 채상병 부대 일선 지휘관이 '오판 했다' 판단
경찰은 지난 8일 해병 1사단 7여단장과 예하 포병 선임대대장 등 6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반면 채상병이 수해현장을 수중 수색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때 지휘라인의 최상단에 있던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 혐의 없음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사고 이후 해병대 내에서 1차 조사를 맡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임 전 사단장이 지난해 7월18일 부하들을 질책했고, 현장 지휘관들이 압박감을 느낀 끝에 무리한 수중 수색 지시로 이어졌으며, 결국 채 상병이 사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임 전 사단장이 수색 과정에서 통상적인 지시를 했고, 현장 지휘관들이 지침을 임의로 바꿔 사고가 났기 때문에 직권남용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 사단장의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한 포병대대장 등 현장 지휘관들의 오판이 채상병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결론입니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9일 오후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상병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 수사결과에 "국민 눈높이 어긋난다" 비판 이어져
문재인정부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2021년 1월 시행) 등을 통해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등 경찰 수사권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상대적으로 경찰이 득을 본 겁니다. 심지어 검찰 수사권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제한됐고,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폐지됐습니다.
2022년 5월에는 검찰 수사범위를 2대 범죄(경제·부패)로 축소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후 윤석열정부가 들어서고 2022년 8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시행령을 개정, ‘검수원복(검찰 수사 원상복구)을 시도했습니다. 조직범죄와 마약범죄를 부패·경제범죄에 포함시켜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경찰은 나머지 범죄에 관해선 수사 독립성을 폭넓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숙원’이었던 수사권을 손에 쥐고도 납득하기 힘든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상태입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경찰이 예전과 다른 광범위한 수사권을 행사한다 해도 ‘살아있는 권력’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고 논리를 여러 가지 내세우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상식에서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여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채상병 특검법에 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꺼낸 건 지난 5월21일 1차 거부권 행사 이후 두 번째입니다. 특히 이날 거부권 행사엔 경찰 수사 발표가 결정적인 근거가 됐습니다. 대통령실은 “경찰 수사 결과로 실체적 진실과 책임소재가 밝혀진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순직 해병 특검법은 철회돼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