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이 구명로비로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의 녹음파일이 스모킹건이 됐습니다. 채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한 후 이 대표가 ‘VIP’를 통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를 추진했다는 의혹이 핵심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구명 로비 의혹은 그 사실 관계에 따라 그동안 ‘의문’으로만 남은 ‘외압 의혹 동기’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통령실이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임 전 사단장의 책임을 적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조사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유, ‘채상병 특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2번씩이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배경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전경. (사진=뉴시스)
녹음파일 확보, 공수처 수사 주목
공수처는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알려진 이 전 대표가 “VIP에게 잘 말해 주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확보해 수사 중입니다.
해당 녹음파일에는 이 전 대표가 채상병 사건이 발생한 이후인 지난해 8월9일 지인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내용이 담겼습니다. 녹음파일에서 이 전 대표는 사직서를 내겠다는 임 전 사단장에게 사표 제출을 말리게 하고선 자신이 ‘VIP’한테 이야기를 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VIP는 일반적인 공직사회에서는 ‘대통령’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다시 말해, 채상병 사건의 직계 최고 지휘관이 사직서를 내겠다고 하니까 민간인(이 전 대표)이 현직 대통령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서 사고의 직접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구명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이야기인 겁니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난해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가족의 계좌를 관리한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7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 거부 강력 규탄! 민생개혁입법 즉각 수용! 야당,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구명로비, '국정농단' 비화로 연결될 지 주목
법적인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 등으로부터 직접적인 구명 로비를 부탁받았거나 금전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합니다. 이 전 대표가 자발적으로 나서 공직자 등에 로비를 했을 경우에는 청탁금지법(부정청탁금지) 위반 소지가 있지습니다. 다만 조치는 과태료 부과에 그칩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의 주장처럼 이 전 대표의 ‘구명로비’가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까지 연결돼 실제 행사됐다면, 공직자 등에게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일개 민간인’이 로비를 통해 국정을 농단한 간단치 않은 사건으로 해석이 되는 겁니다.
물론 관련자들은 모두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대통령실은 물론 대통령 부부도 전혀 관련이 없다"며 "무분별한 의혹보도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전 대표도 “녹음파일에 나온 VIP는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임 전 사단장도 입장문을 내고 ”지금까지 이씨와 일면식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