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그간 대형마트, 편의점 등 주요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되는 자체브랜드(PB) 상품은 유통 시장의 주력 소비 품목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물가 기조 속에 특유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우면서 지갑 사정이 얇은 많은 수요층에게 호응을 얻었던 까닭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들 채널은 PB 상품의 기능을 강화하고 종류를 다양화한다는 명분을 토대로 가격을 높인 프리미엄 PB 라인업을 속속 출시하는 추세인데요.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같은 업계의 움직임에 대해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는 PB 상품의 태동 취지에서 어긋나는 조치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최근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 PB 상품의 프리미엄화는 도리어 소비자의 가격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비판마저 제기됩니다.
가성비 좋다는 인식 깨뜨려
PB의 프리미엄화는 애초 PB의 태생 본질과 배치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특히 PB 상품의 경우 특성상 기획부터 생산 과정에 거쳐 광고, 마케팅 및 유통 비용이 절감되는 점을 십분 활용해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유통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는데요. 업체들이 이 같은 요인을 토대로 시장에 뿌리내린 PB 상품에 대해 최근 도리어 가격을 높이는 것은, 자칫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PB 상품의 존재가치는 가성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PB 상품의 프리미엄화는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해 소비자들의 편익을 제고한다는 PB 상품의 본래 태생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진단했습니다.
김주원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총장은 "PB 상품이 초창기 유통 시장에 정착할 때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를 크게 어필했고, 이 부분이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며 "특히 PB 시장의 빠른 확장에는 출시 초기 당시 일반 제조사브랜드(NB) 상품 대비 월등히 낮은 가격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소비자들 역시 이를 확실히 체감하면서, PB 상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된 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이처럼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PB 상품에 대해 익숙해지는 상황 속에 업체들이 프리미엄 PB 상품들을 내놓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이는 PB 상품이 NB 상품 대비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법칙은 물론 PB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감을 깨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른 제조사에서 직접적으로 유통하는 일반적 품목의 PB라 한다면 가격이 낮은 것이 맞지만, 기존에 없는 제품군의 PB일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라며 "이는 가격 결정권이 유통 기업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사실상 경쟁이 없는 PB 상품에 대해서는 업체들이 기존보다 가격을 더 높게 가져가는 전략을 쓸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소비자들은 PB 제품과 관련해 주관적으로 느끼고 감내하는 수준의 가격 선이라는 것이 있다"며 "이 선보다 프리미엄 PB의 가격이 높다면, PB가 본래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물가 기조 장기화 흐름에도 역행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는 시기에 역행하는 행태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특히 일반 NB 상품 대비 PB 상품을 빈도 높게 구매하는 계층의 경우 대부분 높은 생필품 및 먹거리 가격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데요.
실제로 통계청의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84(2020년=100)로 1년 새 2.4% 오르며 작년 7월(2.4%)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만. 자주 구입하는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하며 평균치를 웃돌았고, 특히 식품의 경우 3.4% 상승했습니다.
이은희 교수는 "최근 3년여간 서민들이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오히려 더욱 저렴한 상품이 많이 출시돼야 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프리미엄 PB 상품들의 출시가 증가하는 것은 자칫 기업의 이기심이 극대화하는 행태로 비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김주원 사무총장은 "물론 기존 PB보다 더 질이 향상된 PB를 내놓기 위해 프리미엄화한다는 업체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며 유통 업계가 물가 안정에 동참하는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흐름에 맞지 않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먹거리 물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인데, 이 먹거리는 일반적인 공산품이나 의류 등 다른 품목과는 다르게 가격 탄력성이 낮아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야 한다"며 "게다가 프리미엄 PB 상품 증가가 일반 PB 상품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수익성을 추구하는 유통 채널 입장에서 PB 상품의 프리미엄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는데요.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PB 상품은 미끼상품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데, 객단가가 낮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는 고민거리"라며 "게다가 업체들 간 PB 상품을 출시하면서 각자 PB를 차별화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PB의 프리미엄화 추세는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PB 제품 코너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