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도입 여부를 정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 소속 위원이 관련 논의·연구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게임이용장애 코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민관 협의체 위원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연대 공동대표)는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란,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서 'WHO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발표했습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란,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사회적 합의 시급
2022년 WHO의 게임이용장애 코드 등재 결정 이후 국내외에선 찬반 논쟁이 가열됐습니다. 한국 보건복지부는 게임 질병 코드 도입 시 게임 중독 실태 파악·예방·치료 대책을 세울 수 있다며 찬성했습니다. 반면 반대 측은 인권 하락과 의료계의 허구적 치료, 관련 연구가 확증편향적으로 진행될 가능성 등을 우려했습니다.
특히 정신의학·뇌과학·심리학·사회행동학·컴퓨터 게임 디자이너 등은 학계의 합의가 없는 점, 유병률 추정치를 부풀린 경우가 많은 점, 임상 수준 연구는 물론 환자도 찾기 어려운 점, 진단을 위한 구성 체계 작업과정이 약물 사용과 도박 기준에 의존하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한국에선 정부가 2019년 7월 민관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중인데요. 의료계·게임계·법조계·시민단체 등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 총 22명으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회의는 11차례에 불과합니다.
관련 연구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주관한 첫 회의 때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협의체는 세 개 소위로 나눠 연구·연구 용역 발주·검토·보충하고 있는데요. 1소위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다룹니다. 2소위는 게임이용장애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합니다. 이 교수가 속한 3소위는 게임이용장애로 인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파급 효과를 예상하는 연구를 맡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 협의체 운영 방식에 대해 "일 년에 두 번 하는 회의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한 당사자 간 치열한 토론과 세미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란,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특히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하는 위원이 ICD-11 전면 도입을 기정 사실화한 채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우려되는 부분은 정신의학계 위원이 '이건(게임 질병코드 도입) 이미 정한 것이고, 단 한 번도 국내에서 ICD를 거부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도입할 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해서 제가 문제 제기했다"고 혀를 찼습니다.
이 교수는 협의체가 결론을 내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관련 조사와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했는데요. 그는 "남은 기간 질병코드 도입의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임상적·경제적·교육적·문화적 연구와 학술 담론을 지속적이고 전략적으로 생산할 필요가 있다"며 "게임 이용이 대중화 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게임 규제 정책의 역사에서 어떤 특성과 규제 정책의 전환점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비평적·이론적·담론적·학술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이 교수는 협의체의 과제로 △위원들의 이슈 토론과 세미나 △결정에 필요한 객관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추가 연구 △ICD-11에 대한 해외 연구동향 분석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공개 토론회과 국회 공청회 △국내 도입 결정을 위한 합리적·객관적 의사결정 방법과 절차 도입 등을 꼽았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의 협의체 구조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이런 일정을 소화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며 "협의체의 새로운 논의 구조가 마련돼야 하고, 국내 도입과 관련한 좀 더 임상적이고 학술적인 연구가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청회가 열릴 것이라는 예고도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공청회를 열자는 데 협의체 위원들이 찬성했다"며 "국무총리실이든 문체부든 주관해서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박종현 국민대 교수가 '국내 게임 규제 정책 환경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도입 논란의 쟁점들'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헌법상 문화향유권 침해"
이날 토론회에선 게임이용장애 도입 시 게임을 즐기는 국민들이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종현 국민대 교수는 '국내 게임 규제 정책 환경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도입 논란의 쟁점들' 발표에서 "규제 목적의 전제로서 해악이 확정돼야 하는데, 자초하는 해악이 불명확하고 간접적이며, 나아가 중대하거나 필연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인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에 개입하는 국가의 작용은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게임의 과다 이용이 가져오는 해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규명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질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는 규제의 입법목적의 정당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분명히 지적이 필요해 보인다"며 "규제로 인해 달성하려는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애초에 합리적이며 비례적인 규제는 요원하다"고 말했습니다.
법적으로 인정된 게임의 문화예술적 가치가 훼손될 거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현행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은 게임을 문화 산업으로 인정하고 있는데요.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4년 "게임산 업법 및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국가는 인터넷게임 관련 산업 및 문화를 장려하고 있음"이라고 판시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게임은 예술·표현 같은 정신적 창조 활동으로 헌법의 보호 대상인 겁니다.
박 교수는 문화국가원리상 예술의 창작과 이용을 위한 접근·향유가 자유롭게 보장돼야 함에도, 게임 소비만 질병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박 교수는 "다른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는 과다한 이용이나 소비를 질병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유독 게임 이용에 대해서만 이를 문제삼는 것은 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각의 발로"라며 "문화로서 놀이가 갖는 몰입이라는 당연한 속성을 의료적 개입에 의해서 비로소 치료되는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화예술 현상 자체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향유의 재미를 통한 몰입을 강화하는 것이 게임 등 예술문화콘텐츠의 본질적 속성"이라며 "게임 이용이 질환의 전조 증상이 되고 게임이용자 집단이 잠재적 중독자 집단으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게임이용자의 게임문화향유권은 침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