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무상감자 이후 적용되는 기준가 및 시초가 설정에서 시세 조종 악용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상장기업의 감자는 변경상장에 해당해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라 새로운 기준가격 및 시초가를 설정합니다. 감자 이후 거래정지 기간에 따라 최대 200%까지 시초가가 결정될 수 있고, 시초가를 기준으로 당일 상한가로 올라갈 경우 사실상 '따상(기준가 대비 260%)'까지 주가 급등이 가능하단 지적입니다. 해당 규정이 전환사채(CB)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높은 만큼 제도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무상감자 후 거래재개 시 가격제한폭 달라져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자본감소 건으로 기준가격을 새로 설정한 상장기업은 유가증권시장에서 8곳, 코스닥시장에서 17곳, 코넥스시장 2곳으로 총 27곳으로 집계됩니다. 또
뉴보텍(060260),
솔고바이오(043100), 제주맥주 등 5개사가 감자를 진행 중으로 기준가격을 설정할 예정입니다.
감자는 주식을 일정 비율로 병합 또는 소각해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감자로 줄어든 주식수만큼 자본금이 줄어들게 됩니다. 줄어든 자본금은 잉여금으로 분류됩니다. 회사의 주식수가 줄어드는 만큼 변경상장에 해당합니다.
변경상장에 해당하는 만큼 유가증권·코스닥업무규정상 신규상장주식과 마찬가지로 거래재개 시에는 가격제한폭이 새로이 적용됩니다. 통상 주식거래는 ‘시초가’ 결정과 관계없이 기준가격(전일 종가)에서 가격제한폭까지만 변동합니다. 시초가에서 상한가를 기록하더라도 당일에는 추가로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신규상장주식 등 시장상황이나 거래소의 판단 등에 따라 시초가를 기준으로 상한가·하한가까지 가격제한폭이 변경되기도 하는데요. 감자로 인한 변경상장 역시 가격제한폭을 달리합니다.
통상 감자를 통해 거래가 정지된 경우 거래재개시 기준가격(시초가)은 평가가격의 50~150%까지 결정됩니다. 거래정지 기간이 30일을 넘어설 경우에는 50~200%까지도 가능합니다. 감자를 완료해 거래가 재개되는 경우 이때 결정된 시초가에서 추가로 가격제한폭까지 주가변동이 가능합니다. 신규상장주식이 ‘따따블(공모가의 400%)’ 시초가(기준가격) 형성 후 상한가를 기록할 수 있듯이 무상감자 기업도 거래재개 첫날 주가를 큰 폭으로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감자는 주식이 변경돼 상장되는 만큼 거래정지를 동반하게 됩니다. 감자 완료 이후에는 거래정지 전 가격과 감자비율을 통해 평가가격을 설정합니다. 주가가 1000원인 상장사가 10대 1 감자를 진행할 경우 1주당 평가가격은 1만원이 되는 식입니다. 다만 감자 이후 거래재개시 기준가격은 5000원(기준가의 50%)에서 최대 2만원(200%)까지 가능하며, 이날 주가는 결정된 시초가에서 가격제한폭까지 추가적용이 가능합니다.
시초가 개입 가능성…불필요한 감자 주의
일각에서는 일부 상장기업들이 CB 투자자들의 이익보전을 위해 감자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정 투자자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거래재개 직전 동시호가에 개입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진 경우 감자를 통해 추가 리픽싱이 가능한 데다, 시초가 결정에 따라 단번에 투자금 회수도 가능합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감자가 진행되면 오랫동안 거래가 정지됐을 확률이 높다”면서 “이 경우 평가가격의 50~200% 범위에서 시초가가 결정되고 시초가가 기준가격이 돼 플러스·마이너스 30%의 가격제한폭이 적용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증시에서는 결손금 등이 지나치게 커져서 자본잠식 위기에 빠지게 되었을 때 무상감자를 통해서 상장폐지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결손금보다 잉여금(주식발행초과금 등)이 많아 자본잠식 위기가 아님에도 감자를 단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 올해 초 감자를 완료한
웰킵스하이텍(043590)의 경우 잠자결정 직전분기 자본금과 자기자본이 각각 180억원 430억원입니다. 단순 계산시 연간 100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더라도 2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올해 10대 1 감자를 진행한
에스유홀딩스(031860)의 경우 거래정지 전 160원에 종가를 형성했고 평가가격은 160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이후 시초가는 평가가격의 131.25%인 2100원으로 결정됐고 당일 상한가(2730원)를 기록하며 하루만에 70.63% 상승했습니다. 당시 에스유홀딩스는 주당 1503원의 소액공모와 함께 55억원 규모의 CB(전환가 1503원)를 재매각했고, 해당 CB는 모두 주식으로 전환됐습니다. 결과적으로 CB투자자들은 액면가(500원) 밑으로 CB를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감자 전을 기준으로 CB 전환가격은 150원 수준입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지면 투자자들의 관심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감자가 완료되면 감자 비율만큼 유통주식도 줄어들게 되는데,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낮아진 만큼 특정세력이 시초가 형성에 개입하기도 수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자본잠식 위기가 아닌 곳에서 감자를 결정할 경우 CB투자자들의 지분 변동 및 전환가 조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시초가 형성 개입 등)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형에 대해서는 모니터링 기준이 있다”면서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드러나면 감독원에 혐의 이첩이 이뤄진다”고 밝혔습니다.
무상감자 후 거래재개 종목들이 불공정거래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한국거래소 황소상. (사진=한국거래소)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