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공통된 대중 정책을 펼치는 데 반해 대북 정책은 사실상 정반대입니다. 한반도 안보 지형을 좌지우지할 대북 정책에 있어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 같이 동맹 중심의 '확장억제'를 중시합니다. 반면 '북·미 직거래'를 예고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을 패싱하는 대북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흑인 여성 공동체 제타 파이 베타 주최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리스 당선 땐 '연속성'…적극적 대북 정책 '미지수'
28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을 종합해 보면 명확한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36년간 상원의원 중 8년간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하며 외교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던 것과 달리 검사 출신의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에 이어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던 그는 법 집행과 관련된 이력을 가지고 마이너리티(인도계·흑인)로서 인권 문제를 중시해 왔습니다.
때문에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인권이 중요시 될 전망입니다. 우리 정부가 가진 대북 정책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2019년 8월 미국외교협회(CFR)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기 프로그램을 일부 해체하는 대가로 부분적 제재 완화 합의문에 서명할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러브레터를 교환하진 않겠다는 점을 보장하겠다는 말부터 시작하겠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실질적 양보도 담보하지 못한 채 김정은에게 홍보의 승리를 안겨줬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할 일이 심각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써 인정할 수 없다"며 "그러나 단순히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실패하는 방법임이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22년 9월 방한 당시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북한에는 악랄한 독재정권, 불법적인 무기 프로그램, 인권 침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공급에 대해서도 "큰 실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해리스 부통령의 기조상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어 온 동맹 중심의 '확장 억제'를 계승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워싱턴 선언'과 미 핵자산으로 북핵 대응을 명문화한 최근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도 이어갈 전망입니다.
<NBC>는 이와 관련해 "해리스가 대북·대러 정책 등 외교 문제에서 바이든의 노선을 상당 부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전통적 동맹들은 해리스가 바이든의 후계자가 된다면 가장 안심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 이민자 문제 등의 국내 정치에 주력할 수 있어, 사실상 단절 수준인 남북관계가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에 거즈를 붙인 채 15일(현지시각) 미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파이서브포럼에서 개막한 공화당 전당대회(RNC)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땐 안보지형 '급변'…'방위비 인상' 불가피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 때 이어질 '연속성'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때는 한반도 안보 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집권 1기 때 싱가포르와 판문점에서 두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바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미 직거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난 그(김정은)와 잘 지냈고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며 "이제 북한이 다시 도발하는데 우리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면 난 그와 잘 지낼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사를 보인 겁니다.
또 그는 농담을 섞어 말하기는 했지만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직거래에서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 수준의 거래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패싱'입니다. 북·미 직거래의 핵심은 미국을 직접 위협하지 않는 범위의 핵무기 보유 용인인데요. 협상 테이블에 한국이 앉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직접 위협이 되는 핵무기가 동결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전당대회에서 공개된 '2024 공화당 강령'을 보면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오는 2026년부터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도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계산한 듯 일찍이 SMA 협상에 나섰는데요.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SMA 체결을 위한 5차 회의를 지난 12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레임덕(권력 누수)을 피할 수 없어 SMA 협상도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나토 동맹국들의 방위비 지출 기준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서 3%로 상향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SMA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