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해피머니 상품권 발행사가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서 해피머니상품권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습니다. 업계에서는 해피머니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시중에 난무하는 리조트·골프·주유 상품권은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해피머니 결제 중단에 상테크 피해자 속출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티몬·위메프 정산·환불 지연 사태로 사실상 사용이 정지된 해피머니 상품권 피해자 15명은 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해피머니는 티몬 핑계대지 말고 당장 환불하고 금융당국은 지금 당장 조사에 나서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해피머니 상품권은 그간 티몬과 위메프에 대표적인 인기 상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티메프에서 판매하는 해피머니 상품권은 '상테크'(상품권+재테크)족이 애용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상테크란 상품권을 저렴하게 구매한 뒤 현금화해 이득을 보는 소비자를 일컫습니다.
티메프는 그간 최대 10% 넘는 할인율을 내세워 해피머니 상품권을 대량 판매했는데요. 이렇게 할인 구입한 상품권은 수수료 8%를 지불하면 페이코 포인트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페이코 포인트는 다시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전환해 출금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현금 1만원을 앉아서 버는 것입니다.
또 해피머니 상품권은 상품권 결제가 실적으로 인정되는 일부 카드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해피머니 상품권을 결제하면 다른 실적이 없어도 영화할인 등 각종 카드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수백만~수천만원을 들여 해피머니 상품권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자가 늘었으나, 결국 티메프 사태가 터지면서 상테크족은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티메프 사태에 대한 우려로 주요 외식 업체 등 해피머니 상품권 취급점 상당수가 상품권 결제를 중단했고, 사용처가 없어진 상품권은 휴지가 된 것입니다.
해피머니 측은 "티몬 등 큐텐 계열로부터 미정산 금액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이 미정산 상황과는 별개로 고객 불안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진위 확인 후 환불 절차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의 디폴트를 선언한 상황에서 환불이 제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시중에는 해피머니 상품권 뿐 아니라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의 다양한 상품권이 다량 풀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주유소를 이용할 수 있는 주유상품권, 리조트 이용에 쓸 수 있는 외식레저상품권, 호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뷔페식사권, 골프장 이용료 등에 비용을 현금 대신 지불할 수 있는 골프상품권, 구두 등을 살 수 있는 구두상품권 등 종류도 각양각색입니다.
서울 등지에는 물품을 판매하거나 용역을 제공하지 않고 이러한 상품권을 현금화해주는 이른바 '깡'이 존재합니다. 현금은 아니지만 현금화가 가능하다 보니 암암리에 거래처 접대 등 선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구두상품권은 현재도 액면가보다 최대 3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인기인데요. 에스콰이어의 경우 2015년 회사 주인이 바뀌면서 발행된 지 5년이 지난 상품권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켜버리면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해피머니 상품권 피해자들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개혁신당-해피머니 상품권 피해자 간담회에서 환불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본잠식 업체도 자유롭게 상품권 발행·유통
상품권은 현금과 같은 효과가 있는 사실상 금융상품인데도 과거나 지금이나 금융당국이 제재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 상품권을 금융 제도권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제2의 해피머니상품권 사태를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더욱이 해피머니 상품권 사태는 상품권의 발행과 유통이 자유로웠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해피머니 발행사인 해피머니아이앤씨는 수년째 부채총계가 자산총계보다 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어, 휴짓조각이 된 상품권에 대한 보상이 불투명합니다. 금융당국 선불업체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급보증보험도 없습니다.
상품권 발행업자의 자격요건과 금융위 등록을 규정한 상품권법은 1999년 폐지된 후 상품권 발행 발행이나 한도, 업체 자본금 규정 등에 대한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인지세만 납부하면 누구나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시장이 성장하면서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상품권 발행업자는 일정 자격을 갖춰 금융위에 신고하고 연간 발행 한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상품권을 규제하는 발의 법안은 전무합니다.
다만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법'에 관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국회가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최장 70일에 달하는 정산주기가 문제가 됐다고 봤습니다. 천준호 민주당 의원은 통신판매중개자의 정산금 지급 주기를 구매확정 후 7일 또는 배송완료 후 10일 이내로 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로 이커머서의 결제대행업(PG) 겸영 관련 제도개선을 위해 34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커머스가 일시적 현금조달 수단으로 이용자보호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 상품권을 대량으로 판매에 활용하며 판매점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체계에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며 "기재부 등 관계부처와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보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메프 사옥에 구영배 큐텐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항의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