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외국기업들이 잇따라 이탈하며 ‘먹튀’논란이 재차 불거졌습니다. 국회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입법을 통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국내 세제 등 많은 혜택을 주면서도 직장 폐쇄로 인한 대규모 실업사태 등 이탈엔 대책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업 인권 지침이나, 최근 발효된 유럽의 공급망실사법에 따라 외국기업의 원청인 삼성, LG, 현대차 등의 이탈 방지를 위한 관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12일 외투기업 먹튀 문제를 다룬 국회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재영
외투기업 이탈은 공급망 구조문제
12일 국회 및 노조 등에 따르면 근래 말레베어(차부품, 독일), 한국산연(전자부품, 일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전자부품, 일본), 한국와이퍼(차부품, 일본) 등의 직장 폐쇄 또는 철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국기업의 이탈 문제는 국내 인건비 상승과 산업 전환, 경기 부진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여기에 국내 RE100(신재생에너지100%) 달성의 어려움과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 공급망 재편도 외국기업 이탈을 부추기는 문제로 지목됩니다. 국내 현대차나 삼성, LG 등 자동차나 전자 대기업을 따라 해외 부품사가 인도나 미국 등지에 생산거점을 옮기는 동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입니다.
이날 국회에선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박주민 위원장)와 김주영·권향엽·박지혜·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토론회를 공동주최해 외국기업 먹튀 문제를 집중 다뤘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인사말에서 “2022년 10월 구미 공장 화재 발생 후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화재보험금만 수령하고 청산을 결정했다”며 “그 외에도 문제가 일단락된 일본 덴소의 자회사 한국와이퍼를 비롯해 여러 외투기업의 먹튀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현환 전국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은 “외투기업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먹튀”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외투기업을 유치하면서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고용창출과 유지 때문이다. 하지만 외투기업은 한국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쓰다 버린다”고 비판했습니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혁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에 따르면 국내 외투기업의 매출 비중은 2011년 14.7%에서 2021년 10.6%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두자릿수입니다. 그런데 외투기업 고용비중은 2021년 5.5%로 매출에 비해 고용창출효과가 떨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 외투기업이 투자금액과 기업체 수, 고용인원이 많은데 제조업에 집중된 까닭입니다. 김성혁 원장은 “일본이 제조 강국이라 한국에 진출해 고용창출한 비중이 컸다”며 “하지만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많은 기업이 철수하고 있다. 일본 외투기업 고용 문제가 해마다 끊임없이 발생한다. 전반적으로도 외투기업이 매년 2~3개씩 폐업하고 고용승계 안되는 게 최근 국내 경향”이라고 짚었습니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가 있는 외투기업 70개를 분석한 결과, 유한책임회사 2개, 유한회사 9개, 조세피난처를 경유한 회사 5개 등 일반 사업장보다 많은 문제를 찾았습니다. 이런 경영 행태는 폐업이나 자본철수 시 국내 기업과 다르게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입니다. 한국암웨이의 경우 당기순이익 100%를 매년 배당으로 집행하는 등 이윤 유출이 과도한 경우도 포착됩니다. 이들 기업들은 국내 사업장의 실적 부진을 철수 구실로 삼지만 해외 본사에서 이익이 더 나는 배당구조가 문제시 됩니다. 과도한 기술사용료나 지급수수료, 연구개발비도 배당과 비슷하게 이윤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이로 인해 직장폐쇄나 구조조정, 조세회피 등이 벌어지지만 한국법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수익이 안 나도록 계열사나 본사 수익이 높게 내부거래를 악용한다는 지적입니다. 국내서 부동산 특혜를 받아 매각이나 투기에 악용한 의심사례도 생겼습니다.
12일 국회세미나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이재영
‘책임 있는 철수’ 강조하는 글로벌
강민주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국제 NGO) 한국 담당 연구원에 따르면 UN과 OECD 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ILO 다국적기업에 관한 삼자선언 등은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을 강조하면서 ‘책임 있는 사업철수’를 권고합니다. 이는 강제적이진 않지만 유럽의 공급망실시지침(CSDDD) 등 점차 법제화 되는 추세입니다. 강민주 연구원은 “CSDDD가 각 국가의 입법 시 가이드라인에 책임 있는 단절의 내용과 기준을 명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단절 일환으로 사업철수에 관한 기준도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7월25일 CSDDD가 발효됐습니다. 글로벌 기업(유럽 역내 및 역외)의 노동 인권에 대해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앞으로는 국내 이탈 이슈로 노조와 마찰이 생긴 다국적기업의 경우 해당 인권 문제로 공급망실사법에 걸릴 소지가 생깁니다. 코트라 가이드에 따르면 유럽 공급망 실사 지침에서 규율되는 인권 침해는 근로자에게 공정한 임금과 적절한 생활임금을 제공하지 않거나, 과도한 근무시간을 설정한다거나,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직원의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을 허용하지 않거나 파업 또는 단체교섭권을 금지하는 경우도 해당됩니다. 또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불평등한 임금을 지급하는 행위 등입니다.
EU 공급망 실사 지침 부속서에 명시된 환경 및 인권 항목을 준수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민사책임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손해배상 시에는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전액 보상해야 합니다. 기업은 단독 또는 공동으로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 명백한 경우에만 책임을 져 협력사에 의해서만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책임 의무가 따르지 않습니다. 즉, 해당 손해가 기업 자체, 자회사, 협력사 등 공동 인과관계가 있으면 연대책임도 집니다. 이는 민사책임에 대해서만 해당하며 손해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가 없는 경우에도 유럽은 지침에 명시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포함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법은 현대차나 삼성, LG 등 원청 대기업도 외투기업 협력사의 노동 인권 문제를 방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다만 유럽 공급망실사는 2027년부터 본격 적용돼 규제 공백기가 있는 만큼 국내법을 보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투기업 지원금 환수법(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최근 대표 발의(소관위 심사 중)했습니다. 외국인투자 현금지원에 대한 지원금 환수 절차를 규정하고 외투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외투업에 대해 폐업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신고 내용에 대한 심의 및 조사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김성혁 원장은 “외투기업 문제는 제재 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정부도 해결 의지가 없어서”라며 “국내법만 가지고도 정확히 적용하면 상당부분은 제재 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를 해석하면 노동탄압은 어렵다. 국내서 많은 이익을 내고 장부상 조작해 해외서 이익 많이 낸 걸로 하면 세금도 안 내 국가적 손해다. 그걸 바로 잡도록 정부가 요구해야 한다. 법이 없어도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국제적 망신이다. 이미지 훼손될 사유 개선 권고만 해도 바뀔 것인데 한국 정부가 기업에 관대하고 외투기업엔 더 관대하다 보니 방치된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