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하루 하루 피가 마릅니다. 이렇게까지 안 팔릴 줄은 몰랐어요. 모두가 아파트, 아파트 하다보니 빌라는 찬밥 신세가 따로 없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최 모씨. 현재 은평구 대조동에 빌라를 전세 놓고 있는데 세입자들의 전세 만기 도래와 본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올해 초 해당 빌라를 매매 매물로 내놓았지만 8개월 째 문의조차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빌라와 다가구주택, 연립, 다세대주택 등 이른바 비아파트 주택들이 우리 사회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오로지 아파트만 바라보는 '아파트 공화국' 속에서 빌라 등이 맡아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떨어지는 인기에 수요도 공급도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가 지난 8일 '8·8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비아파트 수요와 공급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제 효과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반응입니다.
"빨리 공급할 수 있는데"…빌라, 인허가·착공·준공 모두 급감
26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6월) 전국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총 1만8332가구로 나타났습니다. 전년 동기간의 2만8570가구보다 35.8%가 줄어든 수치입니다.
서울 시내 한 빌라 밀집 지역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착공과 준공 실적도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착공물량은 2만4046가구에서 1만7366가구로 27.8%(6680가구)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준공(입주)물량 역시 6월 누계 기준 1년 전의 3만6196가구보다 38.2% 줄어든 2만2363가구에 불과했습니다.
빌라 등 비아파트는 아파트에 비해 공사기간이 짧아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비아파트 수요가 급감한 원인으로는 먼저 전세사기와 역전세 여파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빌라를 찾는 임차인들도 줄고 있는데요. 실제 6월 전국 비아파트 전월세거래량은 9만8271건으로 전월 대비 16.1%, 전년 동월 대비 6.7% 감소했습니다.
최근 신혼집으로 서울 중랑구의 한 빌라 전세를 택했다는 임기태 씨(가명)는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입주에 대한 고민이 매우 많았다. 여기에 빌라가 들어선 지역의 난개발로 인한 노후화, 불편한 주차장 등도 빌라 입주를 주저하게 만든 이유"라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에 입주할 지 아내와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당장의 사정을 고려해 빌라 입주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담은 8·8 대책…"효과 제한적"
비아파트 시장 침체는 적어도 1~2년 후 전체 주택 임대차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며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때문에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기관이 지난 8일 대규모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대책을 넣은 겁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최소 6년 임대 후 분양받을 수 있는 '분양 전환형' 신축매입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 공급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무제한 매입이 가능합니다. 또 전용 60㎡ 이하 신축 소형주택을 매입하면 2027년 말까지 세제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합니다. 이외에도 건설 사업자 취득세 중과 완화, 단기 등록임대 도입, 생애 최초 소형 주택수 제외 확대 취득세 감면 등도 포함됐습니다. 청약 기준 무주택 인정 면적도 60㎡ 이하에서 85㎡ 이하로 완화됐습니다.
다만 이런 무주택 기준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 연구소장은 "청약할 때 무주택으로 인정해 준다고 하는데, 수요자들 마음은 그렇다고 왜 전용면적 85㎡ 이하의 5억원 이하 빌라를 사야 하나라고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안 사고 무주택으로 있다가 청약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무주택으로 인정해주는 것만으론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돈 있는 임대사업자들이 정상적인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빌라 밀집 지역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전세금보증금반환보증의 보증요건 완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빌라 임대를 하고 있는 윤 모씨는 "빌라 구입을 두려워하지말고 사라, 그러면 많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신호가 반영된 정책으로 본다"며 "그럼에도 빌라 시장 위축과 임대시장 정상화를 위한 핵심 내용이 빠져있다고 본다. 특히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해 과도하게 강화된 보증가입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손보험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100% 보상을 해주다가 점차 보상한도를 낮춘 사례가 있다"며 "전세보증보험의 경우 임대 사업자들 쪽에서는 가입 한도 자체가 내려가서 내가 돈을 돌려줘야 된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가입은 받아주더라도 보상 한도를 조정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세입자 입장에서도 어차피 다 보상받는 돈이니 아무 데나 들어가자는 생각이 아니라 좀 더 꼼꼼하게 집을 알아볼 여지도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보증요건 완화에 대한 국토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한 매체의 빌라 기피 역효과로 인한 전세보증 문턱을 낮출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에 대해 “다세대 주택에 대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요건을 완화하는 것을 검토한 바 없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