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보험업권 상견례 자리에서 국민 신뢰도 회복을 당부했습니다. 새 회계제도 도입 이후 단기성과 상품 위주의 출혈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업계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보고 있는 요양산업 등과 관련한 규제 완화에 대한 언급은 소홀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민원다발산업' 오명 지적
김 위원장은 28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보험개발원, 10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열고 보험업권의 신뢰 회복과 국민 경제 기여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는 김 위원장이 지난달 취임한 이후 금융업권별 CEO들과의 첫 상견례 자리입니다.
김 위원장은 "보험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민원다발산업이라는 오명 등 보험산업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은 이유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보험산업이 다른 금융업보다 훨씬 긴 자산운용 시계를 가진 만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보험금의 신속한 지급을 위해 의료자문 개편, 손해사정제도 개선 등을 조속히 시행하고 업계에 안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오는 10월 25일부터 시행되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시행기한이 정해진 만큼 직접 챙기겠고 밝혔습니다. 초기 인프라 비용과 의료계와의 협조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4000만명의 보험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추진해 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단기성과 상품의 출혈경쟁 지적에 대해서는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IFSRS17은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은 자사 실적에 유리한 계리적 가정으로 실적을 부풀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오는 10월까지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검토를 마무리하고 보험개혁회의에 상정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IFRS17 제도 도입 이후 첫 금리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건전한 수익증대와 부채관리 등 리스크 관리를 선제적으로 강화해 줄 것을 강조했습니다.
판매채널과 관련 제도 개선도 언급됐습니다. 금융위는 최근 판매채널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보험 법인대리점(GA)에는 금융회사 수준의 책임을 부여하는 보험판매전문회사 제도와 보험사의 판매채널 관리책임 부여 등을 열어두고 검토할 계획입니다.
또한 보험업계에는 비대면 선호 증가와 디지털 기술변화 등에 기반한 새로운 판매채널도 적극적으로 테스트해 주길 당부했습니다. 특히 플랫폼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가입하는 자동차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부터 보험료 체계 등 현황을 전면 재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보험의 역할을 보험금 지급에만 한정하지 않고 생애 전반의 토탈 서비스 제공자로 변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요양·간병·재활 등의 서비스를 보험상품과 결합해 제공하는 보험의 서비스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보험업권의 신탁 활성화를 모색하고 연금전환, 중도인출 등 생명보험금 유동화를 통해 계약자의 사후자산을 노후소득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함께 고민해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장기투자가 필요한 곳에 보험산업의 장기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장애가 되는 요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도개선을 제안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왼쪽)이 28일 서울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보험업권 간담회를 개최하고 보험금의 신속한 지급과 출혈경쟁 방지, 판매제도 개선 등을 주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신사업 규제 완화 후순위
금융당국 수장이 첫 상견례 자리에서 보험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반면, 보험업계가 바라는 신사업 진출 규제 완화는 후순위에 밀려 아쉬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업계는 요양산업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한 자회사 규정 및 겸영·부수업무 확대를 건의했습니다. 향후 초고령사회에서 생보업계의 역할 강화를 위해 실버·요양산업 진출 활성화 등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금융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생보업계는 요양사업 진출로 수익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는 요양시설 설립 관련 규제가 까다롭습니다. 현행법상 요양산업은 토지·건물을 직접 소유하거나 공공 부지를 임차해야 하는 등 자본 요건이 높고 인허가에도 최소 3년의 시간이 걸리는 사업입니다. 따라서 자본력이 있는 대형사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 규제 완화를 통해 균형있는 사업 여건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또한 보험금 청구권 신탁·대출 등 보험자산 유동화 방안과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도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험금 청구권 신탁은 사망한 고객을 대신해 보험금을 관리하고 뜻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신탁입니다.
그동안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사망보험금 청구권이 대상이기 때문에 양도를 허용하면 보험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서는 수익자를 친족, 직계존비속, 배우자로 한정한 생명보험 청구권신탁을 허용하자는 요구가 꾸준했고 올해 3월에는 금융위가 보험금청구권 신탁 도입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는 등 규제개선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IFRS17이 시행되면서 생긴 해약환급금 준비금 개선 방안도 요구됐습니다. 해약환급금 준비금은 고객이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를 대비해 쌓아두는 자금인데, 보험사들은 이 금액이 늘어다면 배당가능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10대 전략과 60여 개 과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보험산업이 국민의 동반자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업계가 합심하여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금융위원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보험개발원, 10개 보험사 CEO가 28일 서울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보험업권의 신뢰회복과 국민경제 기여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