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지난 5월말부터 밸류업이 시행됐지만 보고서를 낸 곳은 제조업 중 3곳에 불과합니다. 현대차, DB하이텍, 디케이앤디만 냈고, 그밖에 안내공시한 곳은 LG전자, 케이티앤지, 포스코 등입니다. 안내공시한 곳들도 4분기에 내겠다고 해, 정부가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겠다고 한 9월 기준 참여율이 저조합니다. 기업들은 밸류업 계획을 공표하고 지켜야 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밸류업 혜택은 배당과 자사주소각에 집중돼 기업자원이 낭비되고 매년 환원금액을 올려야 하는 부담도 생깁니다. 밸류업 세제 혜택이 개인 최대주주에 집중되면서 기업 자원이 사익편취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밸류업 참여율, 3개월째 1% 미만
12일 재계에 따르면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지난 5월27일 이후 3개월을 넘겼지만 밸류업 계획(보고서)을 공시한 곳은 14곳뿐입니다. 이날 기준 상장사 2595(코스피 845, 코스닥 1750)개 중 1%에도 못미칩니다(0.53%). 주로 금융사들이 냈는데 제조업만 보면 단 3곳에 그칩니다. 시가총액 10위권 내 보고서를 낸 곳은 현대차뿐이라 현재로선 시장 파급력도 약합니다. 정부는 9월 중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기로 했으나, 정책 시행 전후를 비교할 모수가 부족합니다.
당초 밸류업 계획 공시가 연례 보고서 형태가 되면서 기업들은 많은 부담을 호소했습니다. 공시를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규제나 여론 파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으로 구체화한 밸류업 혜택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배당에 따른 법인세 지원 혜택은 매년 배당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기업 실적이 나빠지거나 M&A 등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한 때엔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밸류업 보고서 제출은 의무가 아니라고 했지만 보고서를 내는 기업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세법개정안에 담긴 밸류업 혜택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한정됩니다. 밸류업 공시 기업은 해당 주주환원금액을 매년 늘려야 당해 법인세 혜택을 받습니다. 배당의 경우 기업 잉여현금이 유출되는 부담이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이익소각)도 현금과 자산이 감소합니다.
보고서를 낸 3곳의 경우 배당에 적극적이나 자사주 소각엔 소극적입니다. 현대차는 배당을 늘리고 3년간 자사주를 총 4조원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DB하이텍은 자사주를 기존 6%에서 15%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디케이앤디는 자사주를 39억원 매입해서 6억9000만원어치만 소각하기로 했습니다. 통상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배당가능이익이 지배주주에게 집중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거꾸로 보면, 소각에 대한 밸류업 혜택이 지배주주에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정교하게 만든 부자감세”
법인세 외 세제 혜택은 대주주에게 쏠렸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 자원을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쓰는 잉여현금은 주주 공통자산이나, 대주주가 개인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필요 이상 현금을 쓸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세법개정안 중 밸류업 기업 개인주주에 과세특례(현금배당 분리과세)를 주고,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에서 이런 유인이 생깁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개정안 중)밸류업에 참여해 배당 주는 경우 개인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시켜준다. 대주주는 대부분 종합과세 대상인데 배제해 주겠다는 것”이라며 “종합과세 최고세율 45%, 지방세제 합하면 49.5%인데 이게 밸류업상 분리과세되면 25%까지 줄어든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또한 “밸류업 기업들이 가업상속공제(중소, 중견까지)를 최대 2배까지 받도록 하는데,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하면 상속세 부담이 제로”라며 “중소기업은 상장사가 없고 중견기업만 해당되는데, 문제는 이번에 중견기업 판단 규정을 바꾸면 제조업 기준 R&D비용을 7500억원 정도 쓰는 기업까지도 조세특례법상 적용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러면 대기업 상장사도 중견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정교하게 만든 부자감세”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밸류업 핵심은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 자본시장 투명성 제고인데 그런 근본 조치 없이 배당을 더하면 세금을 깎아준다”며 “어떤 경우에는 상속, 세습하려고 배당금을 높일 때가 있는데, 거기에 세금까지 깎아주면 그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더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남는다”고 논평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