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정부가 2년마다 발표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공청회에서 시민단체들이 단상을 점거하며 반대 행동을 벌였습니다. 향후 15년간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소 건설 계획을 담은 11차 전기본의 실무안은 지난 5월 발표됐는데요. 원자력 발전은 많이 늘리는 데 비해 재생에너지는 부족하게 늘린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시민단체가 정부안의 강력한 폐기 요구 시위를 펼친 만큼 국회 보고에서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권 입맛 맞춘 공청회 "주민 의견 반영 안돼"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1차 전기본 공청회를 개최했습니다. 전기본 실무안 마련에 참여한 실무위원회의 각 워킹그룹 위원 등을 비롯해 정부·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했습니다.
당초 공청회는 10시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단상을 점거한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에너지정의행동,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단상을 점거한 채 피켓 시위 등을 펼치면서 지연됐습니다. 소란이 계속되자 경찰이 일부 인원을 행사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는데요.
공청회는 20분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됐지만 "공청회를 중단하라", "정부안을 폐기하라" 등의 고성이 오갔습니다. 제11차 전기본 총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동욱 중앙대학교 교수가 "구호가 난무하는 데 메시지는 전달됐으니 앉아 달라"고 요청해 겨우 진행됐습니다.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오늘 공청회를 무산시키려다 실패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공청회 선정위원들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 11차 전기본이면 2년마다 진행돼 20년이 넘었지만 회의록 등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청회면 핵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하는 데 일방적으로 진행돼 의미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정동욱 교수는 "전기본은 장기적인 15년 간의 전망을 제시하지만 방식 자체가 일종의 쿼터제처럼 보여 이런 주장이 나오는 듯하다"며 "12차 전기본을 수립할 때는 좀 더 논의해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시민단체는 '11차 전기본 백지화 네트워크'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날 공청회를 저지하기 위해 울산, 경주 등 지역에서 네트워크 소속 50여명의 활동가들이 새벽 5시에 출발해 세종에서 시위를 펼쳤고 17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부는 2032∼2033년까지 경북 울진군에 원전 2기를 지을 예정인데요. 울진에만 10기가 들어서게 됩니다. 최경숙 팀장은 "한 지역에 원전 10개가 밀집된 것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며 "울진 지역 주민들에게 핵폭탄을 안고 살라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백지화 네트워크가 26일 서울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11차 전기본 공청회를 앞두고 단상을 점거한 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11차 전기본 백지화 네트워크)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백지화 네트워크가 26일 서울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11차 전기본 공청회를 앞두고 단상을 점거하자 경찰이 이를 진압하면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사진=11차 전기본 백지화 네트워크)
"재생에너지 늘려도 국제 흐름 미달"…야당 반대 관건
정부는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래 전력 수요를 과학적으로 반영하면서도 탄소 중립과 공급 안전성을 고려했다는 입장입니다.
이옥헌 산업부 전력정책관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투자에 따른 전력 수요를 처음으로 산정해 반영했다"며 "우리나라 중장기 전원 구성에 있어서도 원전, 재생에너지, 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 전원을 조화롭게 확대해 나간다는 정책 방향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2038년 전력 수요를 129.3GW로 전망하고 해당 시점까지 10.6GW의 신규 전력공급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열병합 발전과 대형원전 3기,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추가 건설하고 무탄소전원 입찰시장 등으로 신규 전원을 확보하는 내용이 11차 전기본에 담겼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2038년까지 현재 대비 3배로 늘린다는 계획인데요. 이에 따른 2038년 전원별 발전비중은 △원전 35.6% △신재생에너지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5.5% △기타 4.6% 등입니다.
공청회에서는 신규 전원 구성에 발맞춰 송전망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전력계통 워킹그룹 소속 박정도 위덕대 교수는 "전력망의 신속한 건설을 위해 연내 '전력망확충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허가 특례와 주민 지원 확대 등 수용성을 제고해 송전망 확충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모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입니다. 이르면 연내 전력정책심의회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반대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민주당은 2038년 재생에너지 설비를 현재보다 3배 이상 늘리더라도 'RE100(신재생에너지 100% 사용)'과 같은 국제적 목표와 흐름에 못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하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전체의 30.2%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는데요.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2038년이 돼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30%를 넘지 못합니다.
민주당은 원전 재개에도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최종안 확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픽=연합뉴스, 자료=산업부)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