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최근 발생한 잠수함 ‘홍범도함’ 화재 사고를 두고 내부 조사 단계에서 ‘복구 불가’ 판단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종 조사 결과가 ‘전손’으로 결론날 경우, 정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329180)은 단일 사고만으로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가량인 최소 1조원 규모의 손실을 떠안을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재무적 타격을 넘어 향후 글로벌 함정 정비 수주 경쟁력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정비 중인 해군 잠수함에서 불이 난 모습. (사진=연합뉴스)
21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9일 발생한 홍범도함에 대한 소방당국 등의 화재 사고 조사 과정에서, 잠수함 내부가 완전히 불에 타 복구가 불가능한 ‘전손’ 판단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손은 수리비가 함정의 현재 가치를 초과해 경제적 복구의 실익이 없다는 뜻입니다. 홍범도함은 최초 건조 당시 약 5000억원이 투입된 1800톤급(214급·장보고-Ⅱ급) 잠수함으로, 복구할 경우에도 해당 모델은 이미 생산 라인이 단종된 데다 재구축 비용과 누적된 방산 자재 인플레이션 등을 모두 반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반 여건을 감안해 만약 대체 함정을 현재 주력 양산 중인 3000톤급 ‘도산안창호급(KSS-Ⅲ)’ 기준으로 신규 건조해 배상하게 될 경우, 대체 비용은 최대 1조원까지 치솟을 수 있습니다.
‘50%’ 수준에 그친 화재보험 보상 한도도 막대한 재무적 피해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통상적으로 함정은 국가 소유지만 창정비(MRO) 기간에는 정비를 맡은 업체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조립 보험’을 들어 위험을 담보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보험료의 재원이 되는 정부의 MRO 사업 발주 예산 자체가 애초에 워낙 빠듯하게 책정된다는 점입니다. 한정된 사업 예산 안에서 수주 단가를 맞추려다 보니, 전체 함정 가액의 절반만 보장하는 ‘언더 인슈어런스’(Under-Insurance, 일부보험) 형태로 보험 계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상법상 일부보험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대법원 확정 판례에 명시된 비례 보상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돼, 함정이 전손돼도 과거 가액을 기준으로 산출된 2500억원가량만 보상받습니다. 만약 해군이 1조원 규모의 대체 건조를 요구할 경우, 보험금을 제외한 7500억원에 달하는 미보상 손실액은 HD현대중공업이 부담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해군 전력 공백에 따른 지연 배상 부담도 리스크입니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함정 지체상금률(1일당 0.075%)을 최대 1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이번 창정비 계약에 적용하면, 하루에만 7500만원의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과거
한화오션(042660)(옛 대우조선해양) 역시 어뢰 기만기 개발 지연 등으로 도산안창호함 납품이 미뤄져 방위사업청으로부터 948억~97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고 소송을 벌인 바 있습니다. 법적으로 지체상금은 계약 금액의 30%(최대 300억원)가 상한선이지만, 별개로 청구될 수 있는 ‘간접 손해배상’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장기간 발생하는 안보 공백과 작전 차질을 환산해 국가가 민사상 별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최종 배상액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납니다.
울산 해군 잠수함 화재 합동감식을 위해 14일 오전 울산소방본부 관계 차량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정문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창정비 과정에 투입된 비용 역시 고스란히 매몰 비용이 됩니다. 잠수함 창정비는 배를 전면 해체해 새 배처럼 조립하는 오버홀(Overhaul) 공정으로, 통상 건조비의 10~20%가 투입됩니다. 홍범도함 정비에도 약 500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산 계약 특성상 업체는 정부로부터 선급금과 기성금을 받아 자재를 확보하고 공정을 진행하는데, 정비 도중 배가 소실되면서 이미 투입한 인건비와 부품값 등이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나아가 정상적인 인도가 불가능해진 만큼 기존에 수령한 선급금마저 국가에 전액 반환해야 합니다.
대체 비용과 누적 지체상금, 매몰 비용을 모두 더한 총 손실액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법조계는 추산했습니다. 지난해 약 2조3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 단일 사고 배상만으로 한 해 이익의 절반가량이 날아가는 셈입니다.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에 따른 법적 제재 리스크도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경영 책임자의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위반이 입증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50억원 이하의 법인 벌금이 부과됩니다. 사망 사고라는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에 대한 직접적인 구속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인정돼 국가계약법상 ‘부정당업자’로 지정될 경우, 최장 1년 동안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공공사업 입찰 참가가 전면 제한돼 후속 방산 수주 길마저 막힐 위기입니다.
15일 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열린 HD현대중공업 중대재해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K방산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미 해군 함정 수리 협정(MSRA), ‘마스가’ 수주전에도 찬물을 끼얹게 됐습니다. 정비 중 함정을 전소시키고 중대재해까지 유발하면서, 깐깐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미국 거대 정비 시장 진출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력 누수를 방어하고 K방산의 MRO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화오션(042660) 등 경쟁사와 협력하는 공조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군함 특성상 민간 보험사들이 인수를 꺼리다 보니 보장 범위가 건조 비용의 50% 수준에 불과해 사고 발생 시 업체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적 위험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예산을 편성하고 종합적인 사고 예방과 보상을 아우르는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