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 전산화 임박…반쪽 시행 현실화

환자 정보·청구 서류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입력 : 2024-09-30 오후 3:09:47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실손보험금 청구 전산화 제도 시행이 임박했지만 '반쪽짜리'로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 등 의료기관 참여율이 저조한데다 청구 서류 범위가 제한적이라 소비자 편익 제고를 위한 전산화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요양기관 참여율 50% 미만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달 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가 시행될 예정입니다.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은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로 전자 전송할 수 있게 됩니다. 병상 30개 이상 병원은 오는 10월25일부터, 의원과 약국은 내년 10월25부터 시행됩니다.
 
본격적인 시작이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요양기관 참여율은 저조한 상황입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요양기관 7725개(병상 30개 이상 병원 4235개·보건소 3490개)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행됩니다. 그러나 참여를 확정한 요양기관은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3774개(48.9%)에 불과합니다.
 
이 중에서도 내달 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시행할 수 있는 병원은 283개 병원으로 전체의 3.7% 수준입니다. 상급종합병원 47곳은 모두 참여하고 종합병원 참여율도 39.9%인데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병원은 전체 병원의 50%를 차지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참여율은 2.7%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병원 참여가 저조한 원인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시스템 구축 비용에 대한 부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먼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대한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시각차는 아직도 큰 상태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은 없는데요. 의료계는 제도 도입 소식이 알려지자, 환자 정보 전송대행 주체를 놓고 크게 반발했습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의정 갈등 사태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업체의 저조한 참여도 난항입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해서는 전송대행기관과 EMR 업체와의 연계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EMR 업체는 의료인이 전자문서로 작성·보관하는 진료기록부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실손 청구에 필요한 서류는 EMR 업체를 통해 보험개발원에 전송됩니다.
 
현재 EMR 업체 55개 중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양기관에서 전송되는 데이터 규모를 모두 감당하려면 EMR 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 12일 금융위원회는 보건당국과 EMR 업체, 보험업계, 보험개발원 등과 간담회를 열고 이견 조율에 나섰습니다.
 
정부가 EMR 업체에 1200만원 내외의 개발비용을 지원하고 확산비 및 유지보수비 추가 지원을 위한 비용을 협의 중이지만, 아직까지 최종 의견 조율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EMR 업체들은 전송 건당 100원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지만, 보험업계 입장에서는 연간 1억건의 보험금 청구를 소화하려면 1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깁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이 서류 제출 불편 등의 이유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실손보험은 지난해 말 기준 3997만명이 가입해 연간 1억건 이상 보험금 청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내달 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가 시행된다. 사진은 지난해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298인, 재석 225인, 찬성 205인, 반대 6인, 기권 14인으로 가결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전산 청구 서류 제한적
 
그러나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병원·의원·약국에서 진료비 계산서와 영수증, 세부내역서 등 필요 서류를 서면으로 발급받습니다. 이후 해당 서류를 보험사에 직접 방문해 제출하거나 우편·팩스·이메일 등으로 전송해야 합니다.
 
다만 디지털 취약계층의 경우 발급받아야 할 서류를 잘 모르거나, 제출 절차의 번거로움이 제기돼왔습니다. 이에 따른 미청구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미청구 실손보험금 추산액은 2021년 2559억원, 2022년 2512억원, 2023년 3211억원입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부터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권고를 해왔습니다. 이로 인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15년 만에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도가 시행돼도 여전히 절차상 불편함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보험업법에 따라 전산 청구가 가능한 서류는 진료비 계산서, 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등입니다.
 
그러나 최근 실손보험 청구 보류·반려 사례 등으로 거론된 암·도수·주사치료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보험금을 청구할 때 병원 측에서 진단서, 입·퇴원확인서, (초진)진료기록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보험사 측에서 전산으로 전송이 가능한 항목 외 서류를 요구한다면 절차상 간편함을 목적으로 한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내달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의료계의 참여 부진에 대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의료계가 우려하는 환자 정보 보호, 청구 서류 기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법적으로 오는 10월25일 시행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료기관 참여율이 저조하면 소비자들의 제도 체감 속도도 느릴 것"이라며 "시스템 구축, 운영·보수 비용을 보험사들이 부담하고 있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업권별로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보니 제도 시행 초반의 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 시행을 앞두고 병원 참여가 저조한 원인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시스템 구축 비용에 대한 부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지난해 6월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보험사 편익만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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