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씨가 윤석열정부의 비선 실세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명씨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리고, 그 실체를 추적했던 <뉴스토마토>로서는 매우 착잡한 심정입니다. 일개 ‘브로커’에 불과한 사람에 대통령 내외가 휘둘리고 국정이 농단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은 여전히 ‘침묵’입니다. 침묵의 배경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명씨 주장에는 사실과 과장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실관계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명씨는 보잘 것 없는 사업가였습니다. 사기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며, 직원 임금조차 해결 못해 노동청에 고발당한 전력도 있습니다.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 명부(DB)를 바탕으로 여론조사로 눈을 돌렸고, ‘김영선’을 만나게 되면서 정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창원을 근거지로 경남을 전전하던 그가 중앙으로 발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 또한 김영선이었습니다.
김종인과 이준석을 만났고, 2021년 6·11 전당대회 이준석 탄생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그는 윤 대통령 내외에도 접근했습니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대통령 내외를 찾았으며, 남다른 눈치와 민첩한 행동력으로 윤 대통령 부부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판세를 읽는 눈과 전략가로서의 설계 또한 기존 여의도 선수들과는 달랐습니다. 여야를 넘나들던 김종인 박사가 그를 아껴 옆에 두었던 점도 분명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 내외와 가까운 함성득 교수도 그의 우군 중 하나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을 비롯해 윤석열정부 임기 첫 해였던 2022년까지는 명씨의 전성기였습니다. 그의 주장대로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에도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2022년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그의 독무대였습니다. 경기도 고양을 지역구로 뒀던, 원외 시절에는 경남 진해를 공략했던 김영선이 느닷없이 창원의창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명씨의 영향력에 기인했습니다. 광역단체장 김진태(강원지사)·박완수(경남지사)의 등장에도 명씨의 그림자가 엿보입니다.
정권 초기 권성동·장제원과 함께 ‘윤핵관 빅3’로 불렸던 윤한홍이 명태균에 이를 간 것도 이 시기입니다. 다 잡은 것 같던 경남지사 자리를 박완수에 내줬던 윤한홍은 자신의 마산고 1년 선배인 김종양을 박완수 빈자리(창원의창)에 앉히려 했지만 명태균의 힘에 밀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컷오프 되었던 김진태가 경선 부활의 기회를 얻은 것도 명씨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습니다.(이 대목은 추후 본지 보도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명씨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김건희 여사가 있습니다. 당시, 그의 내밀한 정보력은 여권 누구나 탐내는 최고급 정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용산 사정과 대통령 내외의 의중에 밝았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윤 대통령 내외에 직접 조언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최측근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뽐냈습니다. 공신보다 머슴을 자처했고, 브로커라면 당연히 뒤따르는 선불 요구가 없었다는 점도 윤 대통령 내외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배경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말을 기점으로 그는 윤 대통령 내외와 소원해졌습니다. 정확한 사유에 대해서는 추가취재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권력에서 멀어진 명씨가 마지막으로 김 여사와 연락을 주고받은 시점이 2024년 총선이었습니다. 김영선은 명씨에게 있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줄 도구였습니다. 김 여사 의중대로 창원의창에서 김해갑으로 김영선의 지역구를 이동시켰지만, 때는 늦었고 한동훈 비대위라는 장벽마저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단수 공천을 요구했지만 김영선보다는 김상민을 챙겨야 했던 대통령 내외 바람과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폭로를 매개로 개혁신당과의 칠불사 회동이 이뤄졌던 연유입니다.
명씨 주장에는 과장된 면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명씨는 오세훈-안철수(서울시장 보궐선거), 윤석열-안철수(대통령선거), 원희룡-나경원(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 단일화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중 실제 그가 역할을 한 것은 대선과 국민의힘 전당대회 정도로 좁혀집니다. 윤 대통령 내외와 멀어진 그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최재형 국무총리 및 이준석 대북특사 추천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자신에 대한 공직 제안은 터무니없기 짝이 없습니다. 그의 잡다한 범법 전력은 형식적으로 전락한 인사시스템마저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명씨는 위기에 처하자, 윤 대통령 내외는 철저히 엄호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은 한껏 과시하는 것으로 전략을 세운 듯합니다. 연장선에서 과장과 협박도 난무합니다. 살고자 함입니다. 저격도 일삼습니다. 칠불사 홍매화가 대표적으로,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습니다. 명씨가 쳐놓은 가십에 휘둘리면 국정 농단의 실체에 다가서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의 입만 주목하는 꼴이 됩니다. <뉴스토마토>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나누는 초유의 엽기적 행동을 일삼았던 명씨에게 언론이 마이크를 빌려줄 이유는 없습니다. 선택적 해명을 통한 자기 합리화만 강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뉴스토마토>는 두 사람을 주목합니다. 국민의힘 전·현직 당대표인 이준석과 한동훈입니다. 한동훈 대표는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는 본지 질문에 대통령실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택했습니다. 계산기만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남은 사람은 이준석 전 대표입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가 나설 때 비로소 이 판은 명태균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보수의 재편이 이준석에 달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숨겨진 진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결코 가라앉지 않습니다. 수면 위로 떠오를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편집국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