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불편한 직시(直視)

입력 : 2024-10-22 오전 6:00:00
“이 영화가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깊이 파고들어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오랜 불편함을 남기길 바란다.”
 
영화 <레드 룸스>의 파스칼 플랜트 감독의 바람은 성공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동안 무겁고 답답한 느낌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만성화한 질환이라 다들 통증에 둔감해진 상태에서 늘어나는 환자들을 고칠 묘안이 있을까.
 
10대 소녀 3명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들을 납치, 강간, 살해, 시신 훼손까지 했다는 혐의로 슈발리에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막 시작되었다. 슈발리에는 ‘다크웹’이라는 수사기관이 추적할 수 없는 온라인공간에 그 모든 과정을 생중계했다. 검사측은 소녀 3명 중 2명의 영상만을 확보했는데, 영상 속에서 범인은 복면을 쓰고 있어 슈발리에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영화는 켈리앤이라는 한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패션모델이자 해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켈리앤은 슈발리에의 재판을 매회 빠짐없이 방청한다. 그녀가 왜 그에게 관심을 갖는지는 불투명하다. 켈리앤처럼 이 재판을 방청하며 슈발리에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또 다른 여성 클레멘타인을 통해 켈리앤 역시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 흉악 범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성도착증) 증상을 가진 사람인가를 의심할 수 있지만 감독은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는다. 
 
검사측이 확보한 영상을 그녀가 훨씬 전에 봤고 다크웹에 자유롭게 접속 가능한 해킹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미 법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능력을 이용해 재판의 향방을 바꾸기도 하니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단선적으로 속단할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정의로운지 아닌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를 보는 관객의 시선까지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독은 관객을 향해서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당신들은 그녀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켈리앤의 불투명함은 관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한다. 왜인가. 우리는 왜 그녀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을 주저하고 그녀의 애매모호함에 끌리는가.
 
온라인공간에서 편법, 탈법을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다고, 나는 완전히 무결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영화에서처럼 스너프 필름의 제작이나 유통에 가담한 범죄는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만, 합법적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영상물을 시청해보지 않은 성인은 극히 드물 것이라 짐작한다. 현대사회에서 해커가 아니어도 불법영상물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여기에 남녀가 따로 있을까? 
 
알페스(Real Person Slash, RPS)가 주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알페스란 실존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허구의 애정관계나 성적표현을 다룬 창작물과 그 행위를 말하는데 주로 미성년의 남성 아이돌 및 남성연예인이 타겟이 된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성적표현이 문제가 되어 2021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알페스 이용자를 처벌해달라는 게시글이 달려 22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성범죄에서 여전히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온라인상 범죄는 더 이상 성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켈리앤을 정의와 불의의 경계선에 세운 의도를 우리는 정확히 읽어야 한다. 불편한 직시(直視). 이 같은 자성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의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믿는다.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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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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