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상륙 초반에는 초저가 공산품이 메인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신선식품에 명품까지 카테고리가 너무 확대되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유통 산업 주도권이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로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1년여간 유통 업계의 화두는 C커머스의 국내 시장 공습입니다. C커머스를 주도하는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은 그간 국내 업계에서 보지 못한 염가 마케팅을 내세우며 공산품을 토대로 국내 유통 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같은 초저가 공세로 국내 유통 기업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아무리 다양한 프로모션과 할인 쿠폰 등을 가미한 마케팅을 펼친다 해도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C커머스와 가격 경쟁에 나서기란 애초부터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도, 정부도 한편으로는 C커머스 제품들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점에 대해 나름 위안을 삼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염가 마케팅과 함께 쏟아지는 공산품들 상당수에서 가품은 물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발암물질 등이 발견되면서 이에 거부감을 갖는 소비자들도 점차 증가한 까닭입니다.
비록 가격 경쟁력에서는 뒤진다 해도 제품의 신뢰도에 대한 자신감은 국내 업계 전반에 퍼져있었던 겁니다. 저렴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도 있지만 안정성 높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있기 마련이고, 국내 업체들은 이들 계층을 겨냥하면 되기 때문이죠.
문제는 최근 들어 C커머스의 현지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입니다. C커머스는 신선식품 라인업을 대폭 강화하는가 하면, 명품 등 패션 플랫폼까지 확보하며 품목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하고 있는 추세인데요.
사실 공산품은 기호에 좌우되는 만큼 제품의 질이 불량할 경우 소비자가 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신선식품이나 패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에서도 핵심으로 통할 정도로 서민의 삶과 너무나 밀접히 맞닿아 있는 품목들입니다.
특히 최근 수년간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신선식품, 가공식품 등 먹거리 물가의 급등세가 뚜렷한 상황인데요. 식품의 경우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은 대표적 품목입니다. 물가가 아무리 오른다 해도 소비를 줄이기란 불가능하죠. 서민들 입장에서는 품질이 조금 떨어진다 해도 가격이 저렴한 식품이 있다면 이를 고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제품의 신뢰성만을 강조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것이죠.
물론 국내 업체들이 이들 수요층을 겨냥한 다양한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엄청난 물량 공세를 토대로 C커머스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붙인다면 향후 양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C커머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덤이죠.
안타까운 건 이 같은 C커머스의 상륙부터 현지화 과정이 공정한 경쟁 아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C커머스의 볼륨 확대는 저렴한 가격도 있지만 각종 정부의 규제를 받는 국내 업체들과 다르게 국내법에서 자유로운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미국, 유럽 등 해외 각국은 C커머스 규제를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표방하는 이들 국가 상당수가 C커머스 진입 차단에 나서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C커머스가 우리뿐만 아니라 각국 유통 시장을 장악하는 폐단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C커머스의 불공정 경쟁에 대해 인식하고 보다 빠른 시일 내 신중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C커머스로부터 우리 유통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골든 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김충범 산업2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