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정부가 디딤돌대출로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할 때 적용하는 소액임차보증금(방공제) 범위를 확대해 대출 한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후 부동산 시장은 물론 은행권의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에 맞춰 가산금리를 올리고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던 은행권은 방공제로 가계대출 관리 부담을 줄였지만, 속은 타들어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공제로 대출 한도 조이기
국토교통부는 지난 6일 디딤돌대출 맞춤형 관리 방안을 발표하며 내달 2일 대출 신청분부터 변경된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방안은 수도권에 대해 방공제를 의무로 적용하고 후취담보 조건으로 미등기 아파트에 담보대출을 해주는 신규 대출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방공제는 대출자가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을 때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보호해야 하는 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을 떼어놓고 대출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모기지신용보험(MCI)나 모기지신용보증(MCG)에 가입하는 경우 방공제를 하지 않아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를 받았습니다. 국토부는 이것이 LTV 규정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방공제를 의무화하기로 한 겁니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의 방공제 금액은 5500만원, 경기 등 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4800만원이 적용됩니다.
그간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계속 주문해온 터라 은행권은 방공제로 대출한도를 조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연말을 앞두고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권은 연말까지 연간 가계대출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며 총량을 조절했습니다. 지난 7월과 8월, 또 지난달에도 우대금리를 축소하거나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려 가계대출을 조절했습니다. 이번 방공제 의무를 적용하면 대출한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발맞출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이에 따른 은행의 손실도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당장은 가시적인 손실이 크지 않지만 규제가 계속 되면 추후 수입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방공제로 대출 건당 내줄 수 있는 금액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어찌 됐든 은행은 대출을 통한 수익이 어느 정도 꾸준히 유지돼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규제를 통해 줄이다 보면 결국 수입원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누적되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당국 압박에 눈치…속 끓는 은행
연말까지 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은 당국의 눈치를 보며 대출상품 판매 등 적극적인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당국이 연초 은행이 제출한 연간 가계대출 목표치를 초과하면 내년 한도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은행으로선 당국 눈치를 보며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서울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입주 예정자들에 대한 잔금 대출에 소극적인 것도 이런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대출 한도가 애초 전망보다 적을 뿐만 아니라 일부 은행은 내년부터 잔금 대출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입주는 이달 말부터 시작됩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대출 여건을 감안해 입주기간을 내년 3월말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올림픽파크포레온 같은 대단지들이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대출이 얼마 이상 필요한데도 지금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방공제도 마찬가지로 당국의 강한 압박에 따라가야 하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밝혔습니다.
은행권에서는 방공제 관련 규제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빠르면 내년에는 풀릴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방공제는 표면적으로 쉽게 묶을 수도, 풀 수도 있는 규제여서 빠르면 내년에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규제가 수도권 아파트 매수 수요를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다만 방공제를 통한 대출한도 조이기 방식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양극화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는 수요 억제에 효과적이지만 강남3구 등 고가 지역은 대출 규제와 무관한 구매력 있는 수요자들이 많다"며 "결국 규제는 일반 수요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들이 주로 진입하는 지역의 집값은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 교수는 "서울과 경기도 뿐만 아니라 서울 내에서도 양극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수도권에 규제를 강화하면 수도권 외곽 등 디딤돌대출이 가능한 지역의 주택 매수 수요를 위축시켜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정부가 오는 12월 2일부터 디딤돌 대출로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할 때 소액임차보증금(방공제)을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에 아파트 조망.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