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가 '트럼프 포비아'로 끙끙 앓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이외 주식과 통화를 침몰시키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럽 자강론'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은 특히 심합니다. 금융시장이 바로 출렁이고 있고, 증시는 쇼크 상태입니다. '트럼프 리스크'가 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 실물 경제는 식어가는데 정부는 초긴축 예산을 짰습니다. 건전재정을 하겠다는 건데, 동시에 감세도 하겠다니,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습니다.
'관세맨'(tariff man)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 중에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 10∼20%, 중국 수입품엔 60% 이상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약했죠. '트럼프 1기' 때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에 부가된 추가 관세가 25%였던 것과 비교하면, 후덜덜합니다. 이대로 된다면 수출 중심 경제 구조인 한국이나 독일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트럼프 공약 '고관세' 장기간 실행 가능?…미국 고물가 악화 필연적
그런데, 과연 이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요? 실행하더라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 거시 경제는 꽤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다가올수록 고물가 상황이 악화됐고, 이것이 해리스가 패한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트럼프가 공약한 대로 유례없는 고관세 정책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물가는 더 오를 수밖에 없고, 이건 트럼프의 고관세가 고스란히 미국의 피해로 귀결된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 1기' 시절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 매트 포틴저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 같은 대중 강경파들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힘을 통한 평화'와 대중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완전 분리)을 강조합니다.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관리)과 '다각화'(diversification)를 내건 바이든 정부를 맹비판합니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전면 디커플링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첨단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수 광물인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 리튬, 흑연, 코발트, 망간 등의 채굴·정제·제조·공급 전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2016~2020년 기준으로 희토류 15종 등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광물이 33종이나 됩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세계는 중국 없이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수 없다"(5월 15일자)고 토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대중국 전면 디커플링 가능?…미국도 실패하고 디리스킹 전환
인텔, IBM,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지난해 7월 17일 바이든 행정부에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 추가 조치를 자제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제재정책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인데요. 성명에 앞서 SIA 회원사 CEO들이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나 러먼도 상무부 장관 등 미국 정부 수뇌들을 만나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단일 시장으로는 최대 규모이니 이들에게는 사활적 문제인 겁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중 정책은 정부가 아니라 이들 첨단기업들에 달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가의 상징 중 한 명이자,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떠오릅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량의 절반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외국 자동차 제조사로 유일하게 중국 정부로부터 '차량 개인정보 보호' 인증을 받았습니다. 머스크는 지난 4월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넘버 2인 리창 국무원 총리를 만났고, 최근에는 "중국 입장에선 대만은 (미국의) 하와이 같은 곳"이라고 말해 대만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친중파'인 머스크는 이제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중 핵심이 됐습니다. 그는 앞으로 중국을 어떻게 대할까요?
중국은 미국이 냉전기에 상대했던 소련과 다릅니다. 서로 다른 경제체제에서 살았던 소련과 달리 미국과 경제적으로 깊게 연결돼 있습니다. ‘예정된 전쟁’으로 유명한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MAED(상호확증경제파괴)라고 표현합니다. 이쯤 되면 바이든 정부나 유럽연합이 어쩔 수 없이 디리스킹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5일(현지시간) 키이우를 방문해 볼르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즉생 생즉사'이념외교, '장사꾼' 트럼프에게 '호구'되기 십상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6월 미국 외교관계협회(CFR) 대담에서 "미·중 간 경쟁은, 이 방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일생 동안에도 명확한 결승선(finish line)은 없다"한 것도 기억해야 할 대목입니다.
"나라에서 정책을 만들면 백성은 대책을 세운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대책'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가서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를 외치는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이념 경직성으로는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트럼프는 태생이 '장사꾼'입니다. 아파트임대업자 시절, 하자 있는 아파트를 속여서 팔고 더욱이 이를 자신의 책에 버젓이 소개하는 인물이죠. '거래'를 기본으로 그를 상대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는 '공정거래'가 아니라 '약탈적 거래'에 능합니다. '가치외교, 이념외교'는 이런 유형에게는 '호구'되기 십상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