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범야권은 멘붕에 빠졌지만,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자 피선거권 '박탈' 우려가 커진 겁니다. 20대 대선부터 줄곧 이재명을 간판으로 내걸었던 민주당으로선 당장 새 얼굴을 찾기도 쉽습니다. 반면 김 지사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선명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 대표의 대안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이 선고됐습니다. 형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는 건 물론 10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습니다. 사법리스크 우려가 현실화된 겁니다. 이 대표는 오는 25일엔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선고기일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장동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역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4개 재판 중 단 1개에서라도 유죄가 확정되면 대권행을 접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대표가 낙마할 경우에 대비할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2020년 이후 이 대표는 사실상 민주당의 '원톱' 대권 주자였습니다. 당내 세력도 강고합니다. 당에서 다른 대권 주자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힘든 상황인 겁니다. '비명(비이재명)계'는 22대 총선을 기점으로 탈당, 세력을 모으기 어렵습니다.
김 지사는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잠룡으로 꼽힙니다. 경제부총리 출신이고, 보수정부와 진보정부를 넘나들며 고위직을 역임해 정책능력도 입증했다는 평가입니다. 김 지사는 전국에서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잠재적 지지층을 확보한 셈입니다. 민주당에서 세력이 약한 게 흠으로 지목됐지만 그간 전해철 전 의원, 고영인 전 의원 등 비명계,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꾸준히 규합해 왔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6일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버스(SNS)에 사법부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사진=김동연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보폭도 넓히고 있습니다. 김 지사는 15일 이 지사가 징역 1년 판결을 받은 직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사법부 판단, 매우 유감스럽다"며 "대한민국에 법의 상식과 공정이 남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튿날인 16일엔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권이 주최한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시민사회 연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김 지사가 윤석열정부 국정농단 관련 집회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 지사는 집회가 끝난 후 SNS에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늦은 가을 비 내리는 저녁,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며 "시민들 열기가 뜨거웠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 대표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행보로 풀이됩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 것"이라며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 때문에 무대 뒤로 밀려날 걸 대비해서 대체재로서 부상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이어 "친명계 내부 분열도 노리고 친명계를 자기 쪽으로 흡수도 하는 것"이라며 "(길게 보면) 이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부터 중도 외연 확대를 나서는 대권 행보를 먼저 하면서 김 지사 등 나머지 주자도 마음이 급해진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2일 경기도 화성시 힘펠 본사에서 열린 '경기 기후환경협의체'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지금 비명계가 되면 당에서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렵다"며 "그래서 이 대표와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이 대표 대안이 될 수 있으니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언젠가 친명계가 플랜B를 생각할 때가 온다고 가정하면 김 지사로서는 지금 괜히 친명계의 비판을 살 이유가 없다"며 "또 정부를 공격한다는 측면에서 집회 참석이 나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김 지사는 당내 친명계와 비명계를 아우르는 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 평론가는 "비명계만 가지고 하면 대선 후보로 승산 어렵고 본인이 친명계는 아니다"라며 "결국에는 비명계와 친명계를 아우르는 통합 행보를 해서 기존 당내 '플랜B'에서 앞으로 대선 후보 1위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신 교수 역시 "김 지사는 친명계와 비명계를 아우르면서 갈 것"이라며 "오는 25일 이 대표의 위증교사 판결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독자 노선으로 가겠다고 하거나 비명계 목소리를 대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지사가 대정부 반대 메시지를 강화할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친명계는 마지막까지 이 대표를 붙들려고 하니 김 지사가 굳이 친명계 쪽에 얼굴을 들이밀 일은 없다"며 "사법리스크 추이를 지켜보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고, '김건희 특검' 등 정치적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빈도가 잦아질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 역시 "'반윤(반윤석열)연대' 선봉장 1호인 이 대표, 2호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곧 다 날아가게 생겼기 때문에 김 지사가 새 선봉장 역할을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낼 것"이라며 "당내적으로 볼 때는 친명계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의도와 거리두면 도정 집중하고 호남을 향한 행보를 하겠다"고 전망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