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기소를 비판하면서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을 거론했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자 결선투표에서 가장 근소한 표차로 당선된 인물입니다. 그는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이른바 '세차작전'이라고 불린 브라질의 대규모 부패 수사에 연루됐습니다. 이후 6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중 징역형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건에 휘말린 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3선까지 거머쥔 인물인데요. 그의 정치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그의 정치 행보를 이야기할 때는 살인적인 사법체제에 대한 지적과 문제가 제기되곤 합니다. 토마토Pick이 브라질 사법체계와 룰라 대통령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첫 노동자 출신 대통령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3년 전까지 여러 차례 낙방을 거듭했던 룰라는 브라질의 첫 노동자 출신 대통령입니다. 그는 경제 부도 위기에 처한 브라질을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는데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달 30달러씩 제공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등을 통해 적극적인 빈곤층 지원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약 2000만명의 브라질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났죠. 이밖에도 연금개혁, 브라질판 뉴딜 정책, 브라질 최초 월드컵과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는데요. 이 시기 브라질은 사상 최저의 실업률을 기록했습니다.
룰라는 재선에도 성공하며 퇴임 직전까지 87%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하는데요. 이후 룰라 정부의 장관이었던 후계자 지우마 호세프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돼 2010년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도 "룰라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표현하는 등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지도자로 알려졌습니다.
'법치' 표방한 룰라 잔혹사
그랬던 룰라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대대적인 수사에 직면했습니다. 브라질의 뉴튼 이시이 연방수사관이 지난 2015년 1월14일 리오데자네이로 갈레앙 공항에서 영국 런던으로부터 귀국하는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전직 임원 네스토르 세르베로를 체포했습니다. 세르베로 체포는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부패 수사의 시작이 되는데요. 2014년 3월에 시작된 이 작전은 주유소와 세차장과 같은 소규모 사업체를 이용해 범죄 수익을 세탁하는 암시장 요원이 타깃이었으나, 브라질의 거대한 부패 스캔들로 발전하게 됩니다.
-판검사의 룰라 죽이기 : 재임 시절 룰라 대통령은 퇴임까지 지지율 90%에 이를 정도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복선이 깔린 사건으로 인해 구속됐는데요. 당시 룰라에 대한 수사를 주도한 것은 세르지우 모루라는 브라질 엘리트 연방판사였습니다. 그는 일명 '세차작전'으로 광범위한 반부패 수사를 벌였습니다. 당시 노동자당의 4번에 걸친 정권 창출에 보수정당, 언론, 기득권층, 종교계의 반감이 심했습니다. 명확한 물증 없이 룰라와 호세프가 부패 혐의자로 내몰린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등 공신은 단연 모루였습니다. 모루의 검증되지 않는 주장이 언론에 여과 없이 전달되면서 의혹과 수사만으로 전·현직 대통령 2명의 범죄는 기정사실화가 됩니다. 결국 정부·여당 인사들이 잇따라 구속됐습니다.
-아파트 받은 혐의로 구속 : 검찰이 2016년 3월10일 룰라가 고급 복층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았으며, 돈세탁 혐의도 있다고 기소했습니다. 그러면서 브라질 검찰은 아파트가 룰라 명의는 아니지만 룰라 가족의 요청대로 아파트를 개조했다는 건설사 내부 문건을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룰라는 검찰이 충분한 근거 없는 '소설'같은 이야기로 기소했다고 반발했는데요. 이때 재판장에서 검찰은 "증거가 없는 것은 증거를 은닉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발언을 해 두고두고 회자됐습니다.
양극단으로 분열된 브라질
브라질은 호세프가 탄핵된 후 양극단으로 더 극심하게 분열됩니다. 호세프가 탄핵당하고 룰라가 구속되면서 노동당 정권이 몰락하자 2018년 대선에서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군인 출신의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몰락합니다. 그의 거침없는 혐오 발언과 막말은 언론에 자주 공개가 됐는데, 그 중에는 과거 인권탄압을 저질렀던 군부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발언에도 거침없었습니다.
-무너진 민주주의 : 보우소나루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미의 트럼프'란 별명으로 불렀는데요. 그가 추진했던 정책도 트럼프의 정책과 닮았습니다. 총기 소유 권리 확대, 임신 중단 반대, 반이민 정책, 환경규제 철폐, 코로나19 경시 등으로 국민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흑인, 원주민,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 대한 비하 발언도 이어갔고, 그들을 배제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 아마존의 환경은 급격하게 파괴됐고, 그가 집권하던 시기 시민권의 범위가 축소되는 등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몰락했습니다. 그렇게 임기를 채운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에서 재등장한 룰라에게 패배했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패배 뒤 곧바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여전히 미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룰라, 재판 승리로 부활
룰라가 대선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브라질 연방대법원, 우리나라로 치면 헌법재판소가 2심 재판만으로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해 580일 만에 그를 석방했기 때문입니다. 2년 뒤에는 실형 선고도 모두 무효화됐습니다. 혐의 자체가 '무죄'로 나온 건 아니지만 절차상 문제와 판사의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재판 전체를 무효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룰라는 대통령으로 3선에 성공합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