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하고 여야의정 협의체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갈등이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의료개혁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이 의료 민영화의 불씨를 당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토마토Pick에서 국회에 이미 발의된 관련 법안들을 통해 올바른 의료개혁 방향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의료 공공성 약화 우려”
정부는 지난 8월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연내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2차 실행방안에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과 실손보험 구조개혁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선 1차 실행방안에는 의료인력 확충과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필수의료 수가 보상 강화 등의 정책이 포함됐습니다.
-의료공백 이유로 민영화 속도? : 1차 방안은 의료개혁의 핵심인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오히려 정부정책 방향이 의료 공공성 강화가 아닌 의료기관 간 무한경쟁과 급속한 의료 민영화로 빠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가 의료공백을 이유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시행하면서 규제완화에 나서고, 비상진료 유지를 위해 대규모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면서 건보 보장성 약화를 방치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최근 시민사회단체들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민 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를 꾸렸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자칫 정권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생색내기용 의료개혁이나 의정갈등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사달래기용 개혁으로 끝날 수 있다”며 “의료에 대한 국가책임을 포기하면서 의료 산업화와 영리화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필수의료 강화 특별법 △공공의료 강화법 △공공의대 설립법 △지역의사제 도입법 △적정 의료인력 확충·지원법 등 국회에 이미 발의된 의료개혁 관련 법안 처리가 의료개혁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필수의료 강화 기금 절실
22대 국회 출범 이후 제출된 필수의료 강화법은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역의료 격차 해소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있습니다. 이 법안에는 5년마다 필수·지역의료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기금 마련이 중요해 보입니다. 지역·필수의료기금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출연금과 기부금, 담배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 총액의 55%, 기금 운용수익금 등으로 기금 조성 방안을 구체화했습니다. 이 기금을 통해 필수의료 성과 보상과 병상·시설·인력 확충, 인력 파견·지원, 지역의사 의무복무 여건 개선, 운영 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공공의료 확충도 필수 과제 : 현재 공공의료기관이 매우 부족할뿐더러 이들 기관조차 만성적인 적자로 인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윤 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이 개정 법안에서는 공공의료기관 의료인 확보를 의무화하고,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의무화하도록 했습니다. 또 진료권을 기반으로 3년마다 공공보건의료 실태조사와 성과 평가를 추진하고, 공공보건의료 정책수가 가산, 공익적 적자 계측과 전액 지원 등의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공공의료 인력 확보해야
공공병원들은 의사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만으로 공공병원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사 수가 늘어났다고 해서 이들이 필수·지역의료에 복무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전액 장학금을 지급해 양성한 의사들이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공공의대 설립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겁니다. 공공의대 설립법은 박희승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격차 해소 위한 지역의사제 : 의대 증원으로 의사인력을 늘린다 해도 의사들이 비수도권과 의료취약지에 근무하지 않으면 지역의료 붕괴와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지역의료에 장기간 복무할 의사인력을 안정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지역의사제 도입법이 시급하게 제정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계약형 지역의사제가 아닌 의무형 지역의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계약형 지역의사제는 의사 개인의 자율 계약에 의존하기 때문에 필요한 의사인력을 필요한 때에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대 국회에 제출된 지역의사제 도입법으로는 김원이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이 있습니다. 이 법안에는 10년 기간의 의무형 지역의사제 운영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인력 확충도 시급 :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적정한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이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일도 필수적입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8월 대표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수립과 함께 적정 보수수준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보건의료인력 등의 모성 보호지침을 마련하고 임신·출산·육아를 위한 휴직 시 추가인력을 상시 배치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