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공소장에 등장하는 11번의 '북한'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이래도 '안보는 보수'라 할 건가

입력 : 2025-01-09 오후 4:11:43
지난 달 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3 내란' 사건(내란중요임무종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으로 검찰이 구속기소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83쪽 짜리 공소장은 사실상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공소장이다. '내란 수괴'가 일체의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장관이 내란 집행자들 중에서도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공소장에는 '북한'이라는 말이 모두 11번 등장한다. 문장 구성상 필요한 세 번을 제외하면, "다음 주에 북한 오물 풍선 등 도발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정보가 있다', "서울 지역에 북한에 의한 직간접적인 도발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한국 내 북한 동조세력인 민간인을 동원하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 도발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 주는 영내 활동 위주로…", "2024. 11.경부터 북한 오물풍선 상황이 심각한다는 이유로", "북한 쓰레기 풍선 상황이 심각하다"는 등이다.

"북한 도발 가능성 매우 커"… 출동 준비태세 명분 활용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내란의 장군들'은 이렇게 북한 위협 상황을 내세워 부하들에게 '출동 준비 태세'를 지시했다. 이는 물론 "북한 공산 세력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문)한다는 명분으로 내란을 일으킨 내란 수괴와 김용현 전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공소장은 이들이 대략 지난해 3월 말~4월 초순경부터 비상계엄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9월에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본다.
 
이 무렵 실제로 우리가 비상계엄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북한 오물 풍선 상황이 심각한" 상황이었을까.
 
2023년 12월 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하고 통일·민족 개념 지우기에 나섰다. 그리고는 한국에 대해서는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말부터 대규모 오물풍선을 남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급기야 10월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한 폴란드 대통령 방한 환영 행사장에 그 쓰레기가 떨어지기도 했다. 이어 지난 7월 말부터는 경기도, 강원도, 인천시 등 접경지역 전역에서 대남 확성기로 음산한 기계음 등 괴소음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선제적 도발이 아니라 남한 탈북단체 등이 보낸 대북전단에 대한 극도의 신경질적 반응 성격이 강했다.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북한 저강도 대응
 
전반적으로 북한은 2025년 조선노동당 창건 80돌과 2026년 열릴 예정인 9차 당대회를 위한 성과를 내는 데 초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무렵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파병을 시작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한국에는 신경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세 차례(3·9·10일) 발생한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한 대응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사회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노동당사 집무실 상공이 그를 비난하는 전단을 단 무인기에 뚫리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지만, 평소 호전적이기 이를데 없는 북한의 대응은 예상밖으로 저강도였다. '대한민국 군부'가 한 짓이라며 "평양서 발견한 한국군 무인기 잔해"라는 '증거 사진'까지 공개했지만, 김정은이 직접 군부 최고위 인사를 모두 소집한 '국방 및 안전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주재하고, 북한 전역에 배포하는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무모한 도전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전방 지역 8개 포병 여단을 '사격 대기 태세'로 전환하고, 서해 접경 지역 해안포도 개방했으나 모두 내부 조치였다.
 
이미 해온 '오물 풍선' 살포와 대남 확성기 '괴소음' 방송,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전파 교란 외에 남쪽을 향한 직접 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정전협정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의 '중재'를 촉구하기까지 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 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하여 침해당하였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담화를 낸 것이다.
 
적어도 최근 국면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주요 안보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북은 내부 추스르기에 몰두하느라 남쪽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셈이다.
 
결국 비상계엄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북풍 몰이', '북한 팔이'를 한 것이다. 이래도 계속 '안보는 보수'라 주장할 것인가? 
 
북한 외무성은 지난해 10월 11일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와 대북전단. (사진=연합뉴스)
 
부승찬 "'V'의 지시로 평양 무인기 침투, 군 관계자 증언 확보"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은 북한 주장대로 그 주체가 한국군이라는 의심이 사실로 굳어져가고 있다. 급기야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승찬 의원은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이 'V(대통령을 의미)의 지시'라며 '국가안보실에서 무인기 침투 작전이 하달됐다'고 말했다는 군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공개했고, 내란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국가안보실은 극력 부인하고 있으나 그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 사건과 별개로, 내란 사건 기획자 중 하나로 의심되는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공격을 유도한다', '오물풍선' 등의 메모가 발견됐고, 지난해 11월 말에 당시 김용현 장관이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원점타격을 지시했으나 김명수 합참의장의 반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윤석열이 12·3 내란 사태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군사 공격을 유도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며 "외환죄를 추가한 '내란 특검법'을 곧바로 재발의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이전까지 한국 보수가 벌여온 '북풍' 공작은 주로 선거를 위해 북한이 한 행위를 증폭·악용하거나 북한과 공모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상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먼저 북한을 자극해서 공격을 유도해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동안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해왔다는 도덕적 우위가 완전히 파탄 나게 되는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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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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