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바둑에도 ‘십계명’이 있습니다. ‘위기십결’입니다. 중국 당나라 황제 현종의 바둑 상대역인 기대소 벼슬을 지냈던 바둑고수 왕적신의 말이라고 전해집니다. 일각에서는 왕적신의 저작이 아니라 송나라 때 유중보가 주장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내용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일 구절이 많습니다.
위기십결은 바둑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새겨들을 만합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욕심을 부리면 이기지 못한다 △입계의완(入計宜緩) 적의 세력에 들어갈 때는 깊게 들어가지 마라 △공피고아(功彼顧我) 적을 공격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 △기자쟁선(棄子爭先) 돌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를 취하라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곳으로 나가라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려라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거나 빨리 움직이지 마라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나도 행동하라 △피강자보(彼强自保) 적이 강하면 내 말이 갈라지지 않게 보강하라 △세고취화(勢孤取和) 형세가 외로우면 싸우지 말고 화평을 취하라의 10가지입니다.
바둑계에서는 이 가운데 ‘부득탐승’을 승부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이기지 못한다는 건데, 궁극적으로는 이기려면 버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가로 세로 19줄, 361개 교차점에 흑(181개)과 백(180개)의 돌을 놓으며 서로 에워싸면서 집을 만드는 게임입니다. 누가 집을 더 많이 갖느냐의 문제인데, 행마(돌이 놓아지는 수순)에 따라 일순간에 포위되기도, 일순간에 살아나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행보를 보입니다.
돌 하나에 순식간에 삶과 죽음이 갈립니다. 9년 전인 2016년 3월13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앞서 내리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은 중앙에서 한 칸 사이를 끼우는 78번째 수로 인공지능 알파고를 무력화했습니다. 이른바 ‘신의 한 수’ 이세돌의 묘수는 0.007%의 확률을 뚫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묘수에 학습이 되지 않은 인공지능 바둑기사는 일순간 무너졌고, 이세돌은 알파고에 이긴 유일한 인간이 됐습니다.
알파고는 2017년 5월 중국의 커제 9단과 대국을 끝으로 바둑계에서 물러났습니다. 공식 전적 68승 1패. 유일한 1패가 이세돌 9단에게 패한 것이었습니다.
이세돌 9단은 대국 후 “왜 거기에 뒀냐”는 물음에 “수가 거기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위기십결로 말하자면 부득탐승, 봉위수기입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위험을 만났으니 그저 버린다’ 버림의 미학이 오히려 바둑을 살린 겁니다.
헌법재판관들이 3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권한쟁의심판 등 사건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와 '신의 한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가 기약없이 시간만 흐르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야당은 또다시 국무위원 줄탄핵을 외치며 공세를 강화하고, 여당은 기각을 부르짖으며 서로 아전인수식 해석만 거듭합니다.
입장차에 따라 극단으로 치닫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양측 모두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벼랑 끝에서 탈출하려는 자와 한 걸음만 가면 손에 잡히는 자가 한치 양보 없는 혈투를 펼치는데, 입 열기가 민망할 따름이죠.
‘찬탁과 반탁’으로 갈렸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국민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뿐입니다. 관전하는 사람들 머릿 속에 ‘묘수’는 분명 있겠지만 입 꾹 닫고 지켜볼 뿐입니다.
욕심 부리면 이기지 못한다는데, 눈앞의 고지에서 욕심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헌재의 묘수는 뭘까요.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지만, 궁금해지는 나날입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