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새벽배송 업체 마켓컬리의 운영사 컬리가 자사주를 매입합니다. 장외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례적인 데다, 흑자 한번 내보지 못한 기업의 주주환원이다 보니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이번 자사주 매수를 기업공개(IPO) 사전작업으로 해석, 기대감을 키우는 모습인데요. 경쟁 업체인 오아시스의 티몬 인수와 맞물려 누가 먼저 증시에 입성할지도 관심사입니다. 컬리의 자사주 매입은 공개매수 방식이라 일반 주주도 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장외 시세도 컬리의 매입 예정가보다 낮아 지금 주식을 매수해 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2조 결손 털고 주주환원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컬리는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자기주식 취득 결정 사실을 알렸습니다. 자사주 매입 규모는 100만주, 150억원입니다. 1주당 1만5000원 꼴입니다.
컬리는 지난해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2014년 12월 컬리의 전신인 더파머스를 설립한 이래 흑자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이익잉여금은커녕 결손 상태였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컬리는 이익을 내지 못했지만 새벽배송이란 사업 모델을 앞세워 그동안 여러 기관들과 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이 돈으로 사세를 키웠습니다. 덕분에 자본이익잉여금이 충분히 쌓여 있었습니다.
컬리의 지난해 3분기 말 재무제표엔 자본잉여금이 2조3609억원, 이익결손금은 2조2879억원으로 나와 있습니다. 2024년 사업보고서에선 이 수치가 자본잉여금 77억원, 이익잉여금 510억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자본잉여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쌓인 결손금을 모두 털어내고 510억원을 남겨, 그 중 150억원을 이번에 자사주 매입에 쓰는 것입니다.
컬리는 NH투자증권에 자사주 매입을 위탁해 오는 1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청약을 받아 9일자로 사들일 예정입니다. 컬리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라면 이 기간에 NH투자증권에 청약 신청하면 됩니다. 물론 신규 투자자가 마감일 전에 컬리 주식을 매수한 후 NH투자증권에 계좌를 개설, 신청해도 상관없습니다. 컬리는 비상장 주식이지만 일반기업으로 분류돼 전문투자자가 아니라도 매수할 수 있습니다.
컬리의 매입 예정가인 1만5000원보다 싸게 매수했다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요. 비상장주식 거래 앱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따르면, 컬리 주가는 올 1월 7000원대까지 하락했다가 1월 말부터 꾸준히 올라 1만2000원대를 유지했고 자사주 매입 공시로 1만4000원대에 안착했습니다. 4월에 들어선 1만4000원대 중반까지 올랐다가 3일 증시의 조정과 함께 1만4000원 부근까지 다시 하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지금 주식을 매수한다고 해서 보유 주식을 모두 1만5000원에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입 예정 주식이 100만주에 그쳐 이를 초과하는 주식이 몰릴 경우 보유 주식 전량을 넘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컬리의 전체 발행주식 수는 4223만주이며, 이 중 최대주주인 MKG아시아(앵커에퀴티)가 569만주(13.49%), 김슬아 대표가 240만주(5.69%)를 보유하고 있습니다.(2024년 말 현재) 이들을 포함해 5% 이상 보유한 대주주들의 지분율이 59%에 달합니다. 이 밖에 다른 투자기관들도 많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소액주주의 보유 주식은 595만주, 지분율로는 14.11% 정도입니다. 만약 이들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모두 청약할 경우 이론상 6대 1에 가까운 경쟁을 치러야 합니다. 컬리와 NH투자증권은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100만주를 초과할 경우 경쟁률에 따라 안분비례할 계획입니다.
또한 비상장 장외주식이기 때문에 차익에 대한 세금도 많은 편입니다. 장외주식 거래는 양도로 분류해 공개매수로 발생하는 차익엔 22%의 양도소득세(지방세 포함)가 부과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덩치’ 컬리-‘이익’ 오아시스…상장도 경쟁
그럼에도 컬리 주주들은 자사주 매입 너머를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자사주 매입으로 MKG아시아와 김슬아 대표 등의 실질 지분율이 오르면 상장을 추진하는 데 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투자자 게시판엔 이같은 기대감이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컬리가 상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실적이 중요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시장의 온도를 감안하면 눈에 띄는 매출 성장 또는 이익 전환 등으로 마켓컬리의 값어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지난해 적자 규모가 크게 축소된 것이 고무적이라고 해도 컬리와 해외 투자자들이 원하는 몸값과 시장의 눈높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컬리로선 IPO를 통해 사모펀드 등의 엑시트를 도와야 해 낮은 몸값으론 IPO를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주주들은 올해 흑자 전환 후 내년쯤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중입니다.
컬리의 상장엔 경쟁 업체 오아시스가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아시스마켓 운영사 오아시스는 컬리보다 먼저 설립했지만 생협과 제휴를 맺어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사업을 키워 성장 속도와 덩치에선 컬리에 밀립니다. 대신 실속을 챙겨 컬리와는 다르게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223억원, 순이익 23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이익이 급증한 결과 덩치에서도 컬리를 따라잡았습니다. 매출액은 여전히 컬리의 4분의1 수준에 그치지만 자본총계와 보유현금(기말)에서 컬리를 앞선 겁니다.
그러나 오아시스도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에 몸값을 높이기 위해 단번에 덩치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온라인마켓 티몬 인수에 나선 겁니다. 시장에선 부실한 대어를 삼킬 경우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으나 일단 투자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티몬 인수가 구체화되면서 장외 주가가 1만원에서 1만3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오아시스 또한 여러 투자기관들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상장을 추진하다가 낮은 몸값에 상장을 철회한 바 있어 시장의 눈높이를 어느 정도 맞출 수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