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들이 충남 당진시 삽교천 위로 비상하고 있다.
매년 겨울, 한국 서해안의 강과 저수지 위로 거대한 형체가 문득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가까이서 보면 놀랍게도 새입니다. 그것도 오리입니다. 몸길이 약 40cm 남짓한 작은 오리,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Anas Formosa, Baikal Teal)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하늘을 나는 장면입니다. 작은 새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압도적인 장면은 단순히 새들의 비행이 아니라, 이들의 생존과 공존 전략이에요.
이 새는 러시아 바이칼호(Baikal Lake) 동쪽과 야쿠티아, 추코트카, 오호츠크해 연안 등 시베리아 동부 전역에서 번식합니다. 전 세계 개체수는 약 50만~70만 마리로 추정되며, 이 중 95% 이상이 매년 한반도를 찾아온다고 알려졌습니다. 머나먼 북쪽에 흩어져 있던 가창오리들이 한반도에서 다시 한데 모이는 셈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머무릅니다. 충남 삽교천, 금강 하구, 전남 순천만 등에서 만날 수 있는데, 추위와 먹이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절한 장소를 찾아 이동합니다.
가창오리의 학명은 ‘매혹적인 오리’라는 뜻입니다. 그 매혹은 가창오리 수컷의 얼굴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청록과 갈색이 어우러진 태극의 오묘한 무늬를 보고 북한에서는 ‘태극오리’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전통 가면극의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화롄야(花?鴨)’라고 불러요. 한국에서 부르는 ‘가창오리’라는 이름은 수십만 마리가 동시에 날갯짓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서, ‘노래할 가(歌), 부를 창(唱)’ 자를 써서 노래하는 오리라는 뜻의 ‘가창오리’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요?
얼굴이 태극무늬인 가창오리 수컷(가운데) 두 마리가 충남 서산시 천수만 해미천에서 넓적부리 오리들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반도에 머무는 기간 동안 가창오리는 밤이 되면 농경지로 날아가 낙곡을 먹고, 새벽이면 물가로 돌아와 휴식을 취합니다. 한낮에는 강과 저수지에서 쉬다가 해질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듯 수만 마리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수만 마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이 장면은 ‘군무(群舞)’라 불릴 만큼 장관입니다. 공중에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움직임은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 같기도 하고, 출렁이는 거대한 파도 같기도 합니다. 유연하면서도 질서 있는 흐름입니다.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귀를 울리는 ‘왁왁왁’ 소리가 들려옵니다.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요란하게 시작된 소리는 곧 세찬 빗줄기처럼 주변으로 퍼져 나갑니다. 소리와 움직임이 하나되어 저녁 하늘을 수놓는 이 순간은, 단순히 아름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많은 새들이 동시에 날아도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말로 합을 맞춘 것도 아닌데 일정한 거리와 속도를 유지한 채 유연하게 형태를 바꿔가며 하나의 흐름으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무리를 지어 날면 어떤 천적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들의 비행은 생존을 위해 모인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힘 그 자체입니다. 이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지금의 우리 사회가 떠오릅니다.
충남 당진시 삽교천에서 낮잠을 즐긴 가창오리들이 석양빛을 받으며 먹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감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곧장 등을 돌리는 모습. 그런 장면들이 우리 일상 속에 너무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기에 가창오리가 펼치는 군무는 단지 경이로움을 넘어서 조화와 배려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작은 오리들이 모이고 뭉쳐서 보여주는 비행의 질서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장면이 아닐까요. 서로의 차이를 안고도 나란히 나아갈 수 있는 길. 지금 우리에게도 가창오리처럼 포용과 화해를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 때입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