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정치권의 혼란 속에 상법, 자본시장법, 가상자산법 등 핵심 법안들의 신설과 개정 논의가 줄줄이 멈춰섰습니다. 투자자 보호와 산업 규제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기 대선까지 더해져 해당 법안들의 처리도 미뤄질 전망입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자본시장 관련된 법안은 상법개정안과 자본시장법안, 가상자산 관련 법안 등입니다.
상법개정안의 경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해 통과시킨 이 법안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민주당은 “더 강력한 개정안을 재상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에서 다시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때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해 그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요. 현재 야당 의석만으로는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표결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됩니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 핵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안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것과 달리,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기존 기업의 재무적 거래 과정에서 나타난 주주 보호 미흡 사례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법인이 합병을 추진할 경우 이사회는 합병 목적과 가액의 적정성을 공시를 통해 설명해야 합니다. 계열사 간 합병에서는 동일한 방식의 일률적인 가액 산정 기준이 폐지됩니다. 또한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모회사의 일반주주에게 공모주 물량의 최대 20%를 우선 배정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다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물적분할과 합병에 한정한 내용만 규율하고 있어,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 등 수많은 재무적 거래 상황에서는 여전히 일반 주주 보호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따릅니다.
단골 공약이지만 지지부진한 가상자산 관련 법안도 주목됩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총 10건에 달합니다. 내용은 가상자산 실명제 도입, 전산장애 공시의무 및 피해보상 절차, 상장 심사 강화, 폐업 가이드라인 마련 등 대부분 투자자 보호 관련 내용입니다. 산업 육성과 관련된 법안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정도입니다.
그러나 6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관련 법안들에 대한 논의는 또 지연될 전망입니다. 과거 대선이나 총선에서 가상자산 산업 활성화 공약이 여러 번 나왔지만, 실제로 입법화된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디지털자산 기본법, 디지털산업진흥청 등 다양한 공약을 내놨지만 이용자보호법 제정만이 현실화됐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규제 완화를 내걸었는데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업계는 이번 대선을 통해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현물 ETF 허용 등 실질적인 규제 완화 조치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야당 관계자는 "법안 재발의와 관련한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대선 공약에 포함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가상자산 2단계법이 발의될 때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함께 진행 되면서 올해 말 즈음에는 가상자산 ETF 상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재 흐름으로는 내년 말 즈음에나 가능할 것 같다. 우리는 해외와 달리 한 박자 더 늦어지는 셈"이라며 "팽창하는 시장에서는 시기에 맞게 제도를 완화해 상품을 다양화해야 경쟁이 가능한데, 현재처럼 닫혀있는 시장에서는 보수 경쟁밖에 이뤄질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김석우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상법개정안 재의요구 관련 관계기관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소영 금웅위 부위원장, 오른쪽은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뉴시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