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과 미국 모두 기준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섰습니다. 한국은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지난 2월 재개된 인하 흐름을 멈췄습니다. 경기 부양이 시급하지만,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극심해진 원·달러 환율 변동성 등을 고려해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미국 역시 지난 3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책금리 조정에 있어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양국 모두 금리 인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발 관세정책 불확실성으로 통화정책 운용 딜레마를 안고 가는 모습입니다.
'널뛰는 환율·치솟는 집값'에…한은,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습니다. 앞서 한은은 연 3.5%까지 올린 기준금리를 지난해 10·11월, 올해 2월 각각 0.25%포인트씩 세 번에 걸쳐 인하한 바 있습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경기 부진 및 글로벌 통상 여건 악화로 성장 하방 위험이 커졌다"면서도 "미국 관세정책 변화와 정부 경기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 경로 불확실성이 크고 환율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동결 배경을 밝혔습니다.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금리 인하를 가로막은 것은 우선 극심해진 환율 변동성이 컸습니다. 내수 부진 속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수출마저 흔들려 경기 부양 필요성 크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관세 충격으로 널뛰는 환율 탓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판단이 뒤따랐습니다.
실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미·중 관세전쟁으로 단기간에 큰 폭으로 뛰었다가 떨어지는 등을 반복하며 변동 폭이 확대됐습니다. 지난달 말 1472.9원까지 갔던 원·달러 환율은 전날 1426.7원으로 하락하는 등 변동성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불과 1주일여 전인 지난 9일 상호 관세 발효 날에는 1484.1원까지도 뛰었습니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와 확대 재지정에 따른 집값과 가계부채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종합(아파트·연립주택·단독주택 포함)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52% 올라 전달(0.18%)보다 상승폭이 확대됐습니다. 가계대출은 낮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최근 늘어난 주택 거래 영향으로 증가 규모가 일시 확대될 것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경기부양 카드 필요하지만…미 연준 "관세정책 탓에 좀 더 지켜볼 것"
미국 역시 이날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이코노믹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수준이 "예상보다 상당히 크다"고 지적하면서 "관세는 최소한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미국은 (최대 고용·물가 안정의) 양대 목표가 서로 긴장 상태에 놓이는 도전적인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파월 의장은 "우리의 도구(기준금리 변경)는 같은 시점에 두 개(고용과 물가)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며 "관세가 올해 내내 연준의 목표 달성에서 더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 우리는 정책 입장에 대한 어떤 조정을 고려하기 전에 더 많은 명확성을 기다리는 게 나은 상황"이라며 금리 인하 등과 관련해서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인해 그간 연준이 금리를 활용해 성장과 물가 간의 균형을 맞춰온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내에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관세정책 불확실성 탓에 통화정책 조정에 있어 신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시장에서는 한국과 미국 모두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올해 내에 금리 인하 단행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 연준이 올해 안에 0.25%포인트씩 서너 차례 금리 인하 단행을 전망합니다. 한국 역시 5월 금통위 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캐슬린 오 모건스탠리 한국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의에선 금리를 인하하기보다 관세 충격이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면서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한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5월에 큰 폭의 하향 조정이 예상되는 만큼 이 시점에 기준금리도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