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사진=뉴시스)
검찰 철옹성으로 보이던 윤석열정권은 3년 만에 무너졌다. 최후의 항전지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였다. 2025년 1월15일 오전 10시30분. 경찰은 경호처의 저지선을 뚫고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혐의를 일으킨 지 43일 만이었다. 경호처는 버스 차벽을 치고 저항했지만 사법 집행을 막지 못했다.
최후의 항전지가 한남동 관저인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당과 진보 일간에서는 한남동 관저를 점지해준 인물이 한 무속인(역술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때마침 청와대 입지가 나빠서, 역대 대통령이 수난을 당했다는 풍수도 유행했다. 이때까지 역술인(무속인) 관저 개입설은 이를 뒷받침할 증언이나 근거가 없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실도 부인했다. 국가 중대사를 역술인이나 무속인에게 의존하겠냐는 원론적인 입장이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여섯 달 후인 2022년 12월4일. 권력의 힘이 중천에 오른 시점에 예기치 못한 'Dog傳'이 시작됐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유튜브 채널인 <스픽스>에 출연해 예상치 못한 불씨를 던졌다. 후일담을 자유롭게 털어놓는 '왁자지껄' 코너에서였다. 당시 유튜브 클립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달렸다. '천공이 윤석열 대통령실 이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왁자지껄이 최초로 폭로하다.'
김종대 전 의원은 다음날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도 했다. 고위 관계자한테서 천공이 정권 출범 직전에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천공이 다녀간 뒤 대통령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관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 최초 보도의 근거는 이렇게 '군 고위 관계자'라는 익명 취재원이었다.
역술인 천공이 2023년 4월19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이건희 기증관 건립 장소)를 돌아보고 인사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행원에 따르면 "이날 천공은 경복궁과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부지를 돌아보고 인사동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사진=뉴시스)
주류 언론이 아닌 토크 중심 유튜브 채널인 <스픽스>에서 이런 민감한 폭로가 나온 과정이 궁금했다. 전계완 <스픽스> 대표는 필자에게 이렇게 소개한다.
"유튜브 방송이 나가기 직전이었어요. 김종대 전 의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상의해 왔습니다. 윤 (전) 대통령 부부의 큰 그림자로 알려진 천공이 관저 선정에 관여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다루었으면 좋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는 그야말로 권력의 칼날에서 검푸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뒤풀이 코너에서 먹방 형식으로 가볍게 흘리고 대통령실과 여론의 추이를 보자고 했습니다."
<스픽스>에서 제기된 의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미디어 워치> 등 몇몇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반면 주요 언론은 관저 출입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ㅈ신문의 한 편집 간부의 의견이다.
"취재원이 '고위 관계자'인 익명인 데다 대통령 관저가 일개 역술인의 개입으로 바뀌었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더구나 작은 유튜브 채널에서 제기한 내용이어서…"
10대 주요 언론 '천공 관저 개입' 보도량. (자료=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분석DB '빅카이즈')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 분석 DB인 <빅카이즈>를 통해 '천공 관저 개입' 키워드로 트렌드를 분석해봤다. 10대 주요 언론(지상파 3곳, 중앙지 7곳) 가운데 2022년 12월4일에서 2023년 2월2일 이전까지 이 이슈를 다룬 기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김종대 발언의 폭발력을 재빨리 의식했다. 조기 진압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의 발언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자 12월5일 '<미디어워치> 등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내놓는다. <미디어워치>는 시사평론가 변희재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박근혜 탄핵의 촉매제 역할을 한 태블릿PC가 조작됐으며, 그 핵심 인사가 윤 전 대통령이라고 거듭 주장해왔다. 대통령실 입장문에 미디어워치를 적시한 데는 이런 맥락이 있었다.
다음은 입장문의 일부.
<미디어워치> 등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 (2022-12-05)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대통령실 및 관저 이전 과정에서 천공이 경호처장과 함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미리 둘러봤고, 이후 대통령 관저가 한남동 외교공관으로 바뀌었다"라는 '거짓 폭로'를 하였습니다. 몇몇 매체는 객관적 검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가짜 뉴스'와 '거짓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경호처장은 '천공'과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천공'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둘러본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 '천공'은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 어떠한 형태로도 관여된 바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중략) 대통령실은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일관된 원칙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김종대 전 의원의 발언 철회 및 사과와 이를 그대로 받아쓴 매체들의 기사 삭제를 강력히 요청합니다.
입장문을 낸 다음 날인 6일 대통령실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김종대 전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를 고발했다. 몇몇 레거시 언론이 공관 개입 진위는 검증하지 않은 채, 대통령실 공지와 고발 사실을 단신 형식으로 보도했다. 유튜브 채널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을 적용했다고 추정된다.
김종대 전 의원의 폭로와 그에 대한 고발 이후 석 달 가까이 천공의 관저 개입 의제를 독자적으로 취재해 보도한 주요 언론사는 없었다. 레거시 언론이 외면하는 사이, 한 비(非) 레거시 언론이 이 의제를 조용히 검증하기 시작했다. 경제 중심 매체인 <뉴스토마토>였다. 기사 트렌드 분석에서 보듯, <뉴스토마토>가 제기한 2023년 2월2일을 기점으로 레거시 언론의 의제로 확산된다. 그 'Dog傳'은 다음 회에 이어진다.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