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벤처·스타트업계가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의무화를 통해 벤처 생태계 확장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법정기금을 벤처투자에 투입하는 것은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혁신벤처기업을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금법 개정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12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 내에선 68개 법정기금 중 5~10%를 중소·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는 중입니다. 벤처기업협회는 올해 3대 핵심 정책 과제 중 하나로 법정기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 의무화를 꼽았는데요. 모든 산업과 업종에 형성된 기술 기반 벤처·스타트업에 법정기금의 5% 투자를 의무화하는 법 조항 신설을 제안했습니다.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12조원 수준의 벤처투자 시장을 50조원까지 확대하기 위해 법정기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 의무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연간 약 1000조원을 운용하고 있는 법정기금에서 5~10%만 투자를 의무화해도 50조~100조원이 벤처투자 시장에 유입될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벤처캐피탈(VC)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벤처업계 주요 기관도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의무화를 찬성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법정기금의 벤처투자와 관련해 세 기관의 입장을 들어봤는데요. 이들은 벤처 생태계 확대가 필요한 이유와 법정기금이 투입됨으로 벤처투자 시장에 파생되는 효과, 고수익·고위험 벤처투자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내 벤처투자 미비…법정기금 벤처투자로 해결 가능
벤처기업의 성장은 곧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벤처·스타트업이 중소기업을 거쳐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벤처투자 규모 확대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11조9457억원으로 전년 대비 9.5% 증가했으나, 업력 3년 이하 초기 기업 투자는 2조2243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감소하며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선 초기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작년 미국의 VC업계가 투자한 총액은 2090억달러(약 304조원)이며 일본 정부는 2022년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2027년까지 100조원을 투입하는 등 과감한 정책자금 지원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며 "반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미비한 수준으로 인공지능(AI)과 플랫폼 등 미래산업은 고위험·고수익의 특성상 민간자본만으로는 충분한 투자 유인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벤처업계는 입을 모아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의무화를 꼽았습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과 스케일업을 위해선 민간 모험자본 시장의 확대 및 제도화가 필수"라며 "그 일환으로 법정기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VC협회 관계자는 "법정기금은 민간자금의 유입을 위한 마중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벤처기업협회의 이번 법정기금 개정 제안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VC협회도 출자 재원 확대를 통한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연기금, 대학, 공제회 등의 벤처펀드 출자 촉진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코스포 관계자 역시 "현재 국내에서 운용되는 법정기금은 금융, 문화,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운용 방식이 보수적이며 상당수는 안전자산에 집중돼 있다"며 "법정기금의 일정 비율을 혁신기업에 투자함으로써 벤처스타트업의 활성화를 촉진하고, 안정적인 자금확보를 통한 성장 가속화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민간투자 촉진 기대…국민의 삶과도 직결
법정기금의 5~10%만 벤처투자 시장에 흘러가도 연쇄적인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 본부장은 "현재 벤처투자는 약 12조원 수준인데 여기에 50조~100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유입되면 시장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시드 및 초기 단계 기업들의 생존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이어 "정부와 공공 기금이 먼저 투자에 나선다면 시장 전체에 신뢰를 주는 '시그널'이 되고 민간 자본의 동반 투자를 촉진하면서 투자금의 레버리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공적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며 고용, 수출, 기술혁신 측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이끌 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민간자본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시장으로 개선하기 위해 법정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는 의견도 나옵니다. VC협회 관계자는 "공적자금 위주의 국내 시장을 민간 주도로 전환하기 위해 법정기금의 벤처펀드 출자 확대가 필요하다"며 "출자 재원이 확대되면 벤처펀드를 통해 벤처·스타트업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혁신기업이 상장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이 가능하다"고 전망했습니다.
나아가 벤처·스타트업이 확장됨에 따라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단 전망도 제시됐습니다. 코스포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 세수 확대, 국민 서비스 개선 등 경제 외적 가치가 투자로부터 파생되며 이는 국가 경제 전반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AI, 돌봄, 디지털 헬스케어, 리커머스 등 신산업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확대되면 국민 생활서비스의 질 향상은 물론 양질의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해 벤처캐피탈(VC)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벤처업계 주요 기관은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의무화를 찬성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페스티벌 ‘컴업(COMEUP) 2024’. (사진=뉴시스)
기금 포트폴리오 다변화…투자·운용 면밀 설계 필요
일각에선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 법정기금을 벤처투자에 투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벤처투자는 성공한다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손실 가능성이 커 투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벤처업계는 벤처투자의 리스크가 높다는 인식이 만연하지만, 포트폴리오의 분산 효과와 실제 수익률을 고려했을 때 법정기금의 운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VC협회 관계자는 "모험자본이라는 용어의 어감으로 일반 대중에게 벤처투자가 고수익·고위험 투자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을 피하고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유 본부장도 "기금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 벤처투자는 필수적"이라며 "5~10% 수준을 제한적이고 전략적으로 벤처에 투자함으로써 오히려 전체 운용 수익률을 개선하고 리스크도 분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VC협회는 "VC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주요 연기금·공제회가 출자한 벤처펀드는 9.2~17.2%의 높은 수익률을 실현했고, 최근 5년간 국내 벤처펀드의 청산 수익률은 평균 9%대며 특히 상위 25%의 우수 벤처펀드 수익률은 20%를 넘는 경우도 많다"며 "벤처기업협회와 VC협회를 비롯한 벤처 생태계 참여자들이 데이터와 통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투자 대상과 운용 방식을 명확히 설계를 통한 리스크 관리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유 본부장은 "스케일업이 필요한 중·후기 단계 기업, 기술력을 검증받은 팁스(TIPS) 등 정부 지원 사업 수혜기업, 성장성이 높은 AI 및 딥테크 기반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투자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며 "여기에 전문 운용기관을 통한 투명한 집행 시스템을 갖춘다면 공공성과 수익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벤처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 회수 시장의 성장 역시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코스포 관계자는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고 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순 투자를 넘어선 엑시트(Exit) 전략 병행이 필수"라며 "정부와 유관기관이 협력해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2차 펀드 조성 등 투자회수 수단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시장 유동성 확보와 투자자 신뢰 제고를 위한 엑시트 인프라를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정기금 벤처투자, 국가 경제 성장 이끌 것"
끝으로 벤처업계는 법정기금의 벤처투자가 대규모 자금 투입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역설했습니다. 유 본부장은 "법정기금의 5~10%가 투입된다는 건 단순한 '지원'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벤처기업을 국가 성장의 핵심축으로 만드는 구조 개편"이라며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선택이 없다면 향후 우리 경제 회복 속도와 혁신 경쟁력은 선진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코스포 관계자는 "안정적인 투자 기반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고도화와 해외 진출을 가능하게 하고 유망 기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며 "법정기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는 시장의 일시적 유동성 공급을 넘어서, 창업 생태계의 구조적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중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창출하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벤처·스타트업계가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의무화를 통해 벤처 생태계 확장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맨위부터) 벤처기업협회, 벤처캐피탈(VC)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사진=벤처기업협회, VC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