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늘리고’ SK ‘줄이고’…재계 1·2위 다른 행보 눈길

삼성, 잇단 M&A…냉난방공조 기업 인수
불황일때 투자 늘리는 역발상 투자 전략
‘리밸런싱’ SK, 매각·통합 등 계열사 축소
에너지와 반도체, AI에 대한 선택과 집중

입력 : 2025-05-14 오후 5:31:48
[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미국발 관세 폭풍과 미중 갈등 속에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최근 국내 재계 1·2위인 삼성과 SK그룹의 상반된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와 SK의 배터리 등 각 그룹사의 주력 사업이 흔들리는 가운데, 양사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그룹 확장과 축소라는 반대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경우 불황일 때 투자를 늘리고 호황기에 더 크게 성장하는 삼성의 역발상 투자 전략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반면, SK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와 반도체, AI에 선택과 집중하는 사업조정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들은 양사의 대응 방식이 엇갈리게 보일지라도 사업 시너지를 높여 효율화하기 위한 움직임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삼성과 플랙트그룹의 CI.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14일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플랙트)을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인수 절차를 연내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플렉트는 1918년 설립된 100년 역사의 글로벌 공조 기업입니다. 플랙트는 현재 65개국의 가정과 사무실, 학교, 병원과 첨단시설에 중앙 공조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해 연 7억 유로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플랙트는 글로벌 대형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에서 높은 제품 성능과 안정성, 신뢰도 있는 서비스 지원 등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냉각액을 순환시켜 서버를 냉각하는 액체냉각 방식(CDU)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냉각용량, 냉각효율의 제품군을 확보했습니다. 지난해 데이터센터 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DCS 어워즈 2024’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플랙트를 인수한 이유는 현재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공지능(AI) 서비스의 빠른 확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냉난방공조 사업은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 등에 필요한 필수 장비로 꼽히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중앙공조 시장이 지난해 610억달러에서 오는 2030년 990억달러로 연평균 8% 성장할 것으로 전망 중입니다.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 부문이 연평균 18%로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판단하며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은 “AI, 데이터센터 등에 수요가 큰  중앙공조 전문업체 플랙트를 인수했다”며 “글로벌 종합공조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했습니다.
 
또 이번 삼성전자의 조단위 인수합병(M&A)은 전장·오디오 자회사인 하만 인수 작업이 완료됐던 2017년 이후 8년 만이라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에 삼성의 위기가 회자되는 국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본격적인 M&A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은 대형 투자나 M&A를 나설 것이란 의지만 있었지 가시적으로 보여준 게 없었다”며 “이 회장이 올해 초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과거에 지체됐던 M&A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일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사의 오디오 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 계약하며 M&A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업계의 기대를 모은 바 있습니다.
 
SK㈜ 리밸런싱 후 구조도. (사진=SK)
 
삼성전자가 잇따른 M&A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반대로, SK는 연이은 계열사 통합과 매각이라는 사업재편(리밸런싱)을 통해 에너지와 반도체, AI 등 주력 사업의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SK㈜는 전날 SK머티리얼즈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을 SK에코플랜트 자회사로 재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SK㈜는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 SK트리켐(65%)과 SK레조낙(51%),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51%)의 보유 지분을 SK에코플랜트에 현물 출자합니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에 대해서는 SK에코플랜트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진행합니다. 이로써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에센코어와 SK에어플러스를 자회사로 편입한 데 이어 이번에 SK머티리얼즈 산하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을 추가로 품게 됐습니다.
 
SK㈜ 관계자는 “자회사들의 성과가 지주사 가치에 직결되는 만큼 중복 사업은 과감하게 통합하고 시너지를 도출하는 등 자회사 지분 가치를 끌어올려 지주사의 기업가치를 높이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자회사 성장을 주도하고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등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지주사 본연의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SK 서린 사옥. (사진=연합뉴스)
 
SK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자산 매각도 리밸런싱의 일환입니다. SK는 지난해 SK렌터카를 8200억원에 매각했으며 SK엔펄스도 3600억원에 팔았습니다. 올해도 추가 매각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SK스페셜티 지분 85%(2조6000억원), SK엔펄스 CMP패드 사업부 지분 100%(3346억원)를 모두 매각했고, 현재는 기업가치 5조원대로 평가받은 SK실트론의 매각 협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SK그룹 계열사가 200개 이하가 된 것은 2023년 8월 201개를 기록한 이후 1년9개월 만입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는 작년 8월 최대 219개에 달한 바 있습니다. 윤선중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SK는 계열사를 너무 늘려놔서 현재 조직 개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며 “지금 나타나는 리밸런싱은 사업구조를 단순화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삼성과 SK의 그룹이 처한 상황에 차이가 있어 이러한 반대 행보가 전개되고 있다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삼성의 확장과 SK의 축소는 모두 그룹 효율성을 높여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각 그룹사가 처해있는 상황이 달라 위기 대응 방식이 달리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은 외부로부터 유관 기술을 수혈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고 SK는 기존 사업들 중 협력할 수 있는 사업체를 묶어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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