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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19일 15:39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업계에는 '불황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겨울부터 금융시장을 짓눌러 온 불확실성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풀 꺾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임기 내 증시 부양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약속해왔다. 시장 역시 불안함 속에서도 기대감을 키워가는 분위기다. 이에 <IB토마토>는 새 정부가 추진할 자본시장 정책을 짚어보고 그 변화가 향후 시장에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 가늠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정권교체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개정안엔 주주권익 보호 차원에서 추진된 집중투표제 강제화도 포함됐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선임할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의 경영권 참여가 확대된다. 이에 시장은 전반적으로 기대감을 표하는 반면, 재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상법개정 '가속도'
19일 정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내지도부 선출 후 상법개정안 입법을 추진한다. 오기형 의원 등이 주축으로 발의된 이번 상법개정안엔 감사위원 선임 시 적용되는 대주주 의결권 3%룰과 주주총회서 집중투표제 강제화 방안이 포함됐다.
김병기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좌)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상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위에 그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상법개정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상법개정안을 조속한 시일 내 입법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법개정안으로) 우리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라며 “국회가 열리면 상법개정안을 최우선으로 통과시겠다”라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은 19일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기업 경영 위축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진보 측 정당이 국회의석 중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엔 무리가 없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집중투표제 강제화…시장 '환영' VS 재계 '우려'
이번 재추진되는 상법개정안엔 집중투표제가 포함됐다. 앞서 지난 3월 개정안에선 빠졌지만, 정권교체 이후 정책 동력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집중투표제 강화안도 재추진 법안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집중투표제란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소유한 주식수에 따라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아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제도 도입시 주주는 1주당 선임 예정 후보자 수만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소액주주는 이사 선입 투표에서 원하는 후표에 몰표를 행사해 이사회 진입을 시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1998년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회사가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거대 여당의 법안 추진 기조와 이명박 대통령의 공략 실천 의지가 맞물리면서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의 구조적 저평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온 대주주 중심 지배구조에 변화가 예상된다"라며 "법안 통과에 따른 주주가치 제고장치가 마련되면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 유인도 커지는 등 자본시장의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제도 도입 이후 기업 경영권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다르면 매출액 상위 600대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상법 개정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인의 56%가 이사의 상법개정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권용수 건국대 KU글로컬혁신대학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앞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지만 기업경영 저해 문제로 1974년 임의 규정으로 전환한 바 있다”라며 “경영권 분쟁이 다수 이어지고 있는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도입 두고 전망 엇갈려
집중투표제 도입을 두고 시장과 재계의 반응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사태와 이수페타시스 유상증자 불발 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고려아연은 올해 1월 MBK·영풍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시도했었다. 당시 고려아연의 시도에 영풍·MBK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될 경우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MBK·영풍 측은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약 46.7%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윤범 회장 측 지분은 우호세력을 합해도 39.1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도 도입 이전엔 장기적으로 MBK·영풍의 경영권 인수가 전망됐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이 된다면 현재 고려아연 측 이사 15명, 연합 측 이사 4명인 상황에서 이사회 장악은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더해 경영권 분쟁의 키메이커인 국민연금이 부여된 투표권을 양측에 공평하게 행사한다면 이사회 장악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집중투표제로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대규모 유상증자도 제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수페타시스 소액주주연대는 "임시주총서 집중투표제 안건 제안"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제안했다. 이차전지 사업을 위한 유상증자를 강행에 따른 반발로 소액주주 연대는 기존 발행주식 수 대비 100분의 20을 초과하는 신주 발행 시 주총 특별 결의를 통한 승인 과정을 명문화하겠는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저지는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향후 집중투표제 도입 이후 이수페타시스와 같은 주주반발이 집중투표제에 의해 제어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은 국내 주식시장의 평가 개선과 가치가 기대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기존 소액주주의 의사표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던 만큼 이번 제도 도입으로 주주 권익 증진이 기대된다는 논리다.
안태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적대적 M&A 시도와 같은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소액주주 권익 증진엔 분명한 개선이 있을 것”이라며 “이전 소액주주의 이사회에서의 의사반영이 부진한 상황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은 환영하고 권장할 만한 일”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