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가 저렇게 많은데 집 없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 수놓은 듯 빛나는 아파트 야경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집을 구하려고 애를 먹고 있다는 일가친척 중 한 명이 떠오르기도 하고, 신혼집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하는 지인이 생각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노년층 45.3%, 중장년층 44.9%, 청년층 11.5%다. 본격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중장년층만 보더라도 절반 이상이 무주택자다. 무주택자는 거주 목적 혹은 실질적 용도를 위해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사람, ‘실수요자’라 불리기도 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또 다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꿈을 꺾으려고 한다. 대출 차주의 소득을 꼼꼼히 따져 대출 한도를 규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이어 ‘페널티 자본’을 부과해 대출 공급자인 은행까지 옥죄겠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때는 집값 안정을 목표로 20차례 넘게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국 집값은 역대급으로 폭등했고, 대출 규제와 보유세 인상 등으로 실수요자 부담만 가중됐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도 “부동산 만큼은 할 말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를 이룬 이재명정부는 또다시 수요 억제 일변도의 처방에 기대는 모양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걸면서도 실수요자의 자금줄을 옥죄려고 한다. 금융소비자와 실수요자라는 개념은 정책 목표를 위해 구분하는 단어일 뿐,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다른 계층의 국민이 아니다.
주택 구매를 위해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대출 한도가 줄면 주택 구입을 포기하거나 다른 무리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금융을 규제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의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는 단골 소재다.
경제 혈관인 자금줄을 담당하는 금융사 건전성의 중요성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 높은 건전성 규제로 인해 국내 은행의 자본 건전성은 당국 기준치를 여유롭게 충족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매달 “국내 은행의 자본비율이 모두 규제 기준을 상회하고 있어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새로운 규제를 덧씌워 은행의 대출 공급을 틀어막는 것이 시장 리스크 대비 과도한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투기와 실수자요의 주택 구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투기를 잡겠다는 명분 아래 선의의 실수요자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공급 확대를 통해 주택시장 수급을 정상화하고 가계 소득을 증대시키는 근본 대책을 도모해야 한다. 대출 총량을 틀어막는 식의 처방은 실수요자의 희생만 강요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종용 금융부 선임기자